호와 불호에 대하여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남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好)을 알아주기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不好)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하지만 살아오면서 지켜본 결과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호를 공유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불호를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내 생각은 이렇다. 호는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쉽게 말할 수 있다. '난 이런 것 좋아해.', '난 이런 사람이 좋더라.',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스쳐 지나가면서도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행동을 발견하면 '어, 나 이런 것 좋아해!'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불호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상대의 기분을 거스를 가능성을 감수하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 혹여 내 주위의 가까운 사람이, 혹은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즐겨하는, 좋아하는 것일까 봐. 그런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것을 보고 '난 이걸 좋아해.'라고 말한다면, 그 상황에서 '난 그거 진짜 싫던데.'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내가 먼저 '그런 것 나 정말 싫어해.'라고 했을 때 상대가 '난 그거 좋아하는데.'라고 대답한다면 이건 이 것대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어렸을 때는 싫어하는 걸 참으면서 스트레스받는 내가 답답하고, 싫어하는 걸 당당하게 말해서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참 부러워했다. 한 때는 친하지 않은 누군가의 '넌 참 싫어하는 것도 많다.'라는 말에 더욱 말을 조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불호를 세심하게 알아주는 사람이 좋아졌다.
좋아하는 것은 평소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다니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지만, 싫어하는 것은 상대의 취향과 내면에 관심을 가지거나 지나가듯이 언급한 것을 기억해내는 것 따위의 노력이 없다면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너 그런 거 좋아하잖아.'라는 말보다,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큰 감동을 받는다. 호를 알아주는 것보다 불호를 알아주는 것은, 나에겐 마치 한 차원 더 높은 관심과 배려를 받는 느낌을 들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불호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강력한 본딩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소중한 관계일수록 '싫어하는 것'을 알아가는데 더 집중한다. 상대의 불호를 기억하고 조심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의 불호를 공유해서 우리의 관계가 상처받거나 흔들릴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