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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호 Jul 03. 2024

동양의 예수

묵자와 그를 따르던 집단 묵가

 제자백가사상을 얘기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뽑는 가school가 바로 유가 도가 법가에요. 하지만 저는 유가 도가 묵가가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법가는 유가의 파생이자 연장선에 서 있고 묵가는 정확히 유가를 겨냥하여 그 철학관이 정초되었으며 정말 춘추전국시대에만 반짝 하고 사라진 집단이에요.

 묵가는 지금까지도 피지배계층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간 프롤레타리아철학이라고 지목되고, 그렇기에 언제나 유가를 주로 하는 중국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핍박받아왔어요. 지배계급, 관료로 구성된 유가 집단과는 다르게 묵가는 노동자, 상인, 군인 등의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당시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에 피어난 여러 제자백가 학파들과 동일하게 묵가 집단의 지향점은 부국강병이었어요. 하지만 그 맹아를 지배계급의 질서와 위계로부터 찾은 것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다수에게서 찾은 것 입니다. 묵가집단은 대부분 노동자 및 군인 출신의 하층 계급으로 이들은 군대의 편제를 기반으로 굉장히 고도로 조직화 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상류층 지식인들이 주를 이룬 유가만큼이나, 혹은 유가를 넘어서 공동체의 교리와 예가 존재했어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테제들을 몇 가지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겸애사상입니다. 겸애를 말할 땐 유가의 별애와의 대조가 거의 필수적 의례 같은데요, 유가의 별애는 ‘나’를 중심으로 하여 가족과 타자를 차등적으로 사랑하라는 것 입니다. 이는 차별적 사랑이 아닌 차등적 사랑으로 시장통의 장사꾼에 대한 사랑과 내 지아비에 대한 사랑이 결코 동일할 수 없다는 거에요. 하지만 묵가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겸애를 주장하는데, 겸애란 모든 이를 차등 없이 동등하게 사랑하라는 것 입니다. 지아비든 지어미든, 시장통의 장사꾼이든 손님이든 차이 없는 사랑을 베풀으라는 것이 묵가 겸애 사상인데, 묵가들은 겸애를 행하는 것이 별애를 행하는 것 보다는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감정에 기반한 사랑이라고 파악할 수 있는 유가의 별애는 사랑에 위계가 존재하기에 시민사회 내에서 평등이 지연될 수 있지만 묵가의 경우 이성에 기반한 사랑이라고 파악한다면 시민사회 내에서 평등이 지연되지 않고 즉각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는 묵가 집단의 주된 구성 계급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층민이 주류였던 묵가 집단은 가족력으로 대물림되는 권위와 황권을 반대하며 만인들의 정치경제적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겸애를 주창한 것이죠.


 두 번째로 비공이라는 테제가 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침공하지 않음을 뜻해요. 묵가의 포괄적 지향점은 부국강병이죠. 그리고 그 주춧돌로 인민들의 안녕과 평등을 지목합니다. 묵가의 이론은 이러해요. 다른 나라를 침공한다면 인민들을 동원해야 하는데 인민들이 동원되면 그들의 신체적 안녕을 보장하지 못 하고, 그들이 농업이나 수공업에서 멀어짐에 따라 의식주의 문제 또한 위태롭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비공 사상을 채택해요. 하지만 이는 역으로도 타국의 공동체 또한 보호하겠다는 여지가 담겨 있는데, 예컨대 앞서 묵가의 겸애 사상에서 사랑을 받는 대상에는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만인을 동등히 사랑하라는 동양의 기독교신앙과 동일하죠. 그렇기에 묵가 집단이 먼저 칼과 무기를 들고 타국을 침략한다는 것은 그들의 교리인 겸애에도 어긋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비유 테제가 있습니다. 이는 정확하게 유가를 겨냥해요. 특히 순자의 예약론(음악을 통해 백성을 교화한다는 이론)을 맹렬히 비판하는데, 유가학파의 예악은 백성들의 혈세를 뜯어가는,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의례라는

거에요. 유가의 지향점이 음악으로의 교화라고는 하지만 그 의례를 행하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투자되고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투자되고요, 더욱이 음악을 통해 그들이 하는 것은 그저 유흥과 향락밖에 없다는 것이죠.

 또한 유가의 삼년상이나 성대한 예(제례와 상례)도 거부하는데, 이는 묵가의 또 다른 교리인 절약 및 검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묵가는 제사를 지내거나 예를 지낼 때 최대한 검소하게 지내라고 교리를 통해 명시해요. 이는 또한 천天 사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 유가에서 예를 지내는 것이 천자의 담지자인 天에 대해 예를 표하며 그 권위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제시될 수 있어요.

 하지만 묵가는 이러한 유가의 질서를 흩뜨려 놓으며 민중신앙을 장려하고 민중의 수호신인 天을 강조해요. 즉 하늘의 권위를 권력의 담지자에서 민중의 수호신으로 전환시킨거에요.


 이 외에도 묵가의 교리는 열 가지가 넘어요.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세 가지만 뽑아 봤는데, 묵가 집단의 경우에는 구체적 삶의 현상들과 가장 맞닿아 있는 자들이기에 실천 측면에서도 굉장히 훌륭한 성과를 냈어요. 이들은 수리사업을 통해 도시와 논촌 곳곳에 물을 보급하고 이론을 뛰어 넘어 실천적으로 사랑을 행했는데, 이들의 겸애와 사랑을 무조건적인 이타주의라고 바라보기에는 조금 결함이 있어요.

 결국 사랑을 행하는 것이 내가 더 잘 되기 위해, 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기 위해서인데, 이러한  측면에서 묵가의 사랑을 이기적 이타주의라고 칭하는게 굉장히 올바른 수식이 될 것 같아요. 어떻게보면 상호간불침해이죠.

 하지만 이들은 진한시기에 접어들며 그 모습을 전혀 찾아보지 못하게 되고 자취를 감추었어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춘추전국시대 혼란스러웠던 전쟁 상황이 끝나고 나서 자연스럽게 묵가와 같은 군사 집단이 필요없게 되었음을 지목하고 있고 강력한 유가, 법가의 이데올로기에 밀려 묵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지목합니다.

 이들은 실용주의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 접근했던 이들입니다. 아마 묵가와도 같은 집단을 현재에서 찾아보자면 구세군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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