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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합니다

ver. 포기

 사랑은 물처럼 흘러가 버렸고 나는 바다 위, 떠 있는 부표처럼 어딘가로 헤엄치기를 그만했다. 대개 이별을 겪은 후, 위로로 듣는 말은 “시간이 약이야.”,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오늘 신나게 놀고 잊자” 이런 말들이다. 전혀 위로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말들도 나중에는 알아서 이해가 갔다. 가만 보면 마음이 참 간사한 것 같다.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겨우 살아서 또 죽을지도 모르는 행위를 하려는 것 보면 사람은 어쩌면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탄생이 나를 사랑했고 죽음이 나를 사랑했으니 말이다. 물론 죽음의 사랑은 반갑지는 않다. 마치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용서다. 장황한 사랑에 대한 찬사는 여기까지 하고 내 어린 첫사랑 이야기를 하겠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수능이 끝나 이성을 팽하고 놓았다. 그럼에 나도 모르게 말해버린 말 “나 네가 좋은 것 같아” 너는 당황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웃다가 종이 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스스로 당황하는 건 입술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최대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봤지만 이렇게 지켜온 6년간의 우정이 무너질까 무서웠다. 하굣길에 만난 너는 아까는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내 용기를 칭찬했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한 달 만에 나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친구들이 반대했다며 나도 너를 친구 이상으로는 보기 힘들다며 그렇게 긴 시간의 용기는 그 짧은 말에 녹아버렸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한 달이 지나고 너는 사과를 했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과였다.

 그 후도 계속되는 사과와 고백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 후로도 잘 만나다 난 대학 생활이 점점 바빠져 너에게 소홀했고 취업을 한 너는 보필이 받고 싶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만을 요구하다 결국 4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었다.     


 인생도 사랑도 다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 이상의 놓침이 싫어질 때 아무거나 부여잡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절묘한 상황, 순간, 모든 경우의 수가 딱 들어맞아 우연히 이루어지는 타이밍 말이다. 아니면 합리화를 위해서 이런 운명론적 이야기들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난 뭘 해도 안된다고 그냥 체념해버리는 것은 운명 탓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꾸 내 인생에서 포기하는 게 늘어나자 짜증이 났고 다 주워 담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버거웠다.

인생과 사랑은 결국 포기를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포기를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포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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