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엄마들의 모임은 마치 정글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살벌하고도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계 같았다. 소중한 아이를 중심에 두고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내 아이에게 시선이 집중되길 (당연히) 바라는 마음이야 십상 이해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해도 너무하다. 어떻게 엄마들 모임에서조차 서열이 나뉜단 말인가.
그렇다. 믿기 힘들겠지만 특히 초등학교 엄마들의 모임은 최상위 포식자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확실한 서열로 나뉘는 피라미드 먹이사슬의 세계가 존재한다.
총 4개의 그룹으로 나뉘는 이 피라미드 서열은 첫 번째, 사교육에 박식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부류가 최상위 포식자 위치를 선점하고 있고. 그 밑으로, 사교육에 의지하고 있지만 정보력은 부족해 최상위 포식자와의 공생을 선언한 부류. 세 번째, 앞선 두 부류와 공생하진 않지만, 나만의 교육 철학으로 적당한 사교육과 공교육을 믹스매치하는 부류. 마지막 네 번째로 사교육에 일절 접근하지 않고 오로지 공교육만을 믿고 있으며 여행 또는 독서, 다양한 문화생활(?) 정도로 아이의 교육을 대신하는 독고다이 한량 부류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개인 피셜이니 믿거나 말거나.
특히 맨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미생물과 동급인 네 번째 부류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먹이를 찾고 있는 최상위 포식자의 물고 뜯고 맛보기 좋은 먹잇감으로 특별 분류되는데. 이유는 이렇다. 24시간 중의 대부분을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하며 시간을 쪼개 촘촘히 보내는 그들에게 시답잖게 여행육아니, 책육아니 하는 말들로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려 드니. 최상위 포식자가 보기엔 꼴봬기 싫을 만도!
그날도 그랬다. 최상위 포식자 중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그녀가 한창 입시 설명회를 가장한 내 아이 똑똑해 자랑을 내놓던 중 비교의 확신이 필요했을까? 뜬금없이 내 손을 잡더니 농담 섞인 말투로 충고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느낌 왔겠지만 나는 독고다이 한량 부류로 가장 낮은 서열에 위치해 있고. 모임에 나갈 때마다 서열 1위 그들에게 물어 뜯기는 중이다.
" 어머! 윤이 엄마! 윤이 엄마는 미래가 없는 엄마 같아요. 아직까지 윤이 학원에 안 보낸다면서요. 아직도 학원 안 보내고 여행만 다녀요?"
" 그러니까, 내 말이! 어쩜 그렇게 매번 여행을 다녀요? 한두 푼으로 여행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 돈 모아 윤이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다 애한테 원망 듣지. 나는 왜 아무것도 안 해줬냐고 하면 그땐 어쩌려고 그래요."
" 윤이가 뭘 알겠어. 여행도 엄마가 가자니까 가는 거지. 그거 다 윤이엄마 욕심 채우자고 하는 거라니까. 생각해 봐요, 윤 이 같은 애들은 나중에 선행한 애들한테 치여 공부 바닥 칠게 뻔한데 불만이 사춘기랑 겹치면 답도 없다니까. 엄마들도 정신 차려야 해. 애들 위해 적당한 희생도 하고 그래야지....."
최상위 포식자 서열 1위들의 왕왕 거림에 모임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교육, 선행 학습 없이 여행만 주구장창 다니는 하위서열인 내게 집중되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와 내 육아 철학을 함부로 평가하는 그녀들이 괘씸하고, 불쾌해지만 그들처럼 대외적인 말주변이 부족한 나로서는 속만 부글부글 끓여댈뿐. 딱히 반문할 거친 문장들이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그저 뾰족한 그녀들의 말을 곱씹으며 ' 이놈의 모임 내가 다시는 나오나 봐라' 주먹만 불끈거릴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매번 엄마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 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흔들려도 곧바로 잡아질 생각이겠지만, 흔들림은 막을 수 없기에. 그들의 말처럼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하는 교육의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내 욕심 하나 채우자고 아이가 받을 사교육의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말처럼 미래가 없는 엄마인 나 때문에 내 아이의 미래까지 증발하게 될까 봐. 그날의 밤은 마음이 일렁이는 소리에 몹시 힘들었다.
나는 그저, 내 아이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마음에 담고. 먼 훗날 어느 날의 미래에 경험이라는 양분을 벗 삼아 세상을 풍부하게 살아나가길 바랐다. 나 자신을 조금 더 확실히 들여다보는 사춘기의 정점에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나를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담아주고 싶었다. 삶을 냉철히 분석하는 아이가 아닌, 친근히 바라보는 시선을 키워 자신을 위로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와 여행을 했다.
남들이 선행 학습에 목을 매고, 고작해야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중학교 수학을 가리키며 이 정도는 해야 SKY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네들 틈에서 사교육에 아이의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고 매년 아이와 함께 여행한 지 벌써 15년.
꼬꼬마 시절부터 열다섯의 지금까지 여행으로 자란 이 아이는 개망나니 중2병의 최고 중심에 서있는 열다섯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녀들의 우려처럼 아이들에게 치여 엄마를 원망하는 아이로 컸을까? 아니면 내 간절한 바람대로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마주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