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그냥 딸이었어
여느 때랑 다른 건 없었다. 아가들은 원래 기저귀를 갈다가 휙 뒤집어 온몸에 똥칠하고 굴러다니는 걸 보면 꼭 입에 넣어본다. 리모컨이든 작은 블럭이든.
하루에 한번 가제수건 통 엎는건 당연하고 한 명 기저귀 갈 때 또 한명이 저 멀리서 달려와 똥기저귀를 손으로 만지려는 것도 당연하다. 아기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날 깨우는 것도 당연하고(주말이지만) 내가 부엌에 있으면 졸졸 쫓아오는 것도 당연하고 냉장고 문 열면 쪼르르 기어와 머리 낑기기 좋게 내미는 것도 당연하다. 이유식 그릇을 손 닿는 곳에 놓으면 그대로 잡아 엎어버리는 것도 당연하고 안아줄 때마다 나의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당연하고 일상적인 오늘도 목욕하고 분유 물리고 기저귀 채우는 데 휙 뒤집어 분유도 안먹고 기저귀도 안차고 운다.
옆에서 보던 남편이 "분유가 잘 안섞여서 그런가봐" 하고 다시 물려주니 먹는데 갑자기 울컥 울고 싶었다.
친정 엄마가 바닥의 티끌을 주우며 "이런거 있으면 애들 먹어서 큰일나" 했던거 어머님이 아가들의 차가워진 발을 만지며 "이렇게 두면 감기걸려서 안돼"했던거 아주 사소하고 별것 아닌 그 말들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아가들이 아파도 내 책임이고. 말이 좀 늦어도 내 책임이고, 너무 활발한것도 내 책임이고, 많이 못 안아주는 것도 내 책임이고, 바닥의 티끌도 내 책임이고, 위에 올려놓은 걸 흐트려도 내 책임이다. 이게 왜 다 내 책임이야 라고 따지면 철없는 행동이라는 거 알지만,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그 왜 대학 때 큰 세숫대야에 소주랑 맥주 댓병 넣고 돌아가면서 다 먹는 협동 게임에서 그걸 비워야 하는 마지막 주자가 매일 '나'인 느낌.
엄마를 보며 비슷한 기분이 든 적이 있었다.
내가 고3일때, 그리고 재수할 때 밤 늦게 집에가면 엄마가 꼭 요깃거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엄마가 싼 나의 따끈한 도시락이 있었다. 취직하고 첫월급 기념 동료들 준다며 늦게까지 머핀을 구울때도, 잔뜩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며 한숨을 쉴 때 엄마가 설거지 해줄테니 출근해야 하는 넌 들어가서 자라고 했었다. 마지못해 응하는 척 하고 모른척 혼자 잤지만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 했었던 걸.
내가 그냥 딸이기만 했을 때 우리 집의 마지막 주자는 엄마였었다.
다진 마늘도 한참을 까서 다져야 하고 먹기 좋게 껍질까진 밤도 일일히 손으로 까 놓은거고 땅콩도 적당하게 구워 껍질을 벗겨놓은거란걸 분명 알고는 있었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사무친다. 보통으로 정돈된 집에서 보통의 식사를 해먹는 건 누군가의 손길이 세세하게 닿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책임은 보통 가족 구성원들 중 <엄마>에게 지워져 있다는 것을.
책임이 지워지는 건 일의 무게뿐만 아니라 마음의 무게가 같이 온다. 단순히 가족 구성원이기만 한다면 내가 하는 모든 집안일과 육아는 한자락 돕는 일이다. 하지만, 책임이 있다는 건 아이가 아프면 죄책감이 느껴지고 세탁이 밀렸거나 마실 물이 없을 때 누가 나를 본다는 거다.
나도 안다. 책임의 무게쯤이야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다. 물이 없으면 끓이면 되고 아가들이 밥을 안먹으면 안먹는가보다 하면 되고 아가들이 기저귀를 갈다가 뒤집으면 더러워진 매트와 옷을 빨면 된다. 잘 정리된 가제수건 통을 엎으면 장난감을 안사줘도 수건만으로도 잘 노니 얼마나 좋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는거.
그러니까 상황이 힘든게 아니라 내 마음이 가끔 터지는 것 뿐이다. 한 살 아이 앞에서 엉엉 울어버릴 만큼.
우리 엄마는 이걸 30년 넘게 했는데. 잘 자고 힘낼거다. 나도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