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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Mar 20. 2021

맨발교실이요?

보통의 교사가 혁신학교에 발령났다.

12년차 초등교사,

5년마다 한번씩 이동하는 공립 교사의 특성상 세번째 학교의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껏 발령받은 두 교 모두 만족하며 생활했기에 어딜가든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일을 가리진 않아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어렵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더 출퇴근이 가까운 학교면 좋겠다 생각했을 뿐.





전보발표시각, 내가 발령받은 곳은 <땡땡초>.

세상에! 그 혁신학교???

평소 다니던 출퇴근길보다 더 들어가는 곳이라 설마 발령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그것도 혁신학교다. 혁신학교로 개교해서 모든 시스템이 혁신학교 맞춤으로 갖춰진 진짜 혁신학교. 올해 개교 후 5년이 되었기 때문에 빈자리가 많이 나서 빨려들어가듯 발령이 났단다. 처음 혁신학교가 생겼을 때는 한번쯤 일해보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요즘은 보통의 학교에서도 혁신학교 못지않은 지원이 많아 자부심이 가득하던 내게 혁신학교 발령은 큰 충격이었다. 나도 집 앞 초등학교가 혁신학교로 전환되는 것에 반감을 품던 보통의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혁신초등학교는 발령 인사하러 간 날부터 남달랐다. 보통은 교무실에서 교감, 교장님과 첫 대면을 하고 업무분장신청서를 내며 올해 업무의 강도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난리다. 하지만 혁신초등학교에서는 업무분장표 대신 혁신학교 사용설명서를 받았다. 업무는 업무전담팀이 따로 해서 선택할 것도 없다지만 혁신학교 사용설명서라니, 보통의 학교와 얼마나 다르길래 사용설명서까지 나눠주는걸까 긴장이 된다. 하나하나 넘기며 살펴보는데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그러졌나보다. 반감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집중의 의미였지만, 한줄 한줄 당황한건 사실이니 무의식의 방출이었을 수도 있겠다.



인상 깊었던 소개글 세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 땡땡초는 맨발교실입니다.

교실에서 실내화를 안신는다고? 그럼 여긴 다 온돌 교실인가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발이 시려운 아이는 알아서 덧신을 준비하면 된단다. 지금까지 실내화를 안가져와서 맨발로 다니던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던게 무색해진다. 교실에서 맨발로 다니는게 왜 혁신적인 건지 도통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실내화를 신는 것 조차도 다르다니 내 찌그러진 미간의 이유가 되었을까. 12년동안 학생일 때도 실내화 신는 것에 의문을 가진적이 없었는데.


둘, 땡땡초는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혁신학교에서는 각종 대회도 없고 상이 없다는 얘기는 누차 들었다. 집 앞 혁신학교 전환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졸업 후 사회는 열심히 한 과정보다 결과에 대해 가차없이 평가한다. 아이가 홀로 설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성실한 과정을 통해 잘하는 방법을 학생 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회는 아이들을 칭찬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였다. 대회를 열고, 채점기준에 의해 수상작을 뽑고 시상을 하는 것 모두 어찌보면 귀찮지만, 상을 받았을 때 아이들의 자부심어린 표정을 보면 하길 잘했다 싶다. 몇몇 눈에 띄는 아이들을 위해 다수가 들러리가 된다는 염려는, 오히려 대회의 종류를 다양화하고 많이 개최해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특성에 맞게 상을 받고 칭찬해주어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최종 목표는 외적 보상을 구실로 성취감이라는 내적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보상 없이 활동자체의 즐거움이라는 그 상위 단계의 만족감을 아이들이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5년차 때 야심차게 보상없는 학급을 운영해보고자 했다가 모범생 아이들을 망쳤다는 실패감을 느끼고 졸업시켜서 반감이 더 큰지도 모른다. 이 학교는 개교 후 5년간이나 보상없이 운영을 해왔다니 노하우는 궁금하지만, 내가 하려니 자신은 없다.


셋, 땡땡초는 회장선거를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리더가 되는 경험을 하기 위해 회장을 뽑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학급 회의를 안하는가 그건 아니다. 이곳의 학급회의는 "다모임"이라는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용어로 불리우고, 천명이 넘는 전교생이 다 모일 수 없기 때문에 학급별 대의원을 뽑는다고 한다. 회장은 없는데 대의원을 뽑는다니 명칭만 다르게 하고 혁신적이라고 한다며 아이러니를 웃었는데 나중에 우리반 대의원을 뽑고 나서야 알았다. 보통 학교의 회장과 혁신학교의 대의원은 기대되는 역할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맨발교실. 바닥을 반질반질하게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청소를 했는지.


매일 밤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학교를 어떻게든 다시 옮겨볼까 끙끙대던 일도 잠시 혁신학교 담임 3주차를 맞이했다. 맨발교실은 무슨 실내화는 무조건 신길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교실에 잠시 들르는 다른 반 선생님들도, 교과서를 받으러 온 아이들도 자연스레 교실 문 밖에서 실내화를 벗고 맨발로 들어온다. 되려 실내화 신는걸 어색해 하길래 미안해서 날잡아 청소를 박박하고 나도 실내화에서 내려왔다. 처음엔 어색해서 양 발가락을 모두 들고 뻣뻣하게 걸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빈 교실에서 양말로 슬라이딩을 타고 있다. 높은 통굽에서 내려오는게 이리도 자유로울 줄이야. 수족냉증인 나는 발이 시려워서 견딜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교실 난방이 빵빵해서 인지 춥지도 않다. 학급 규칙을 정하면서 넌지시 교실에서 실내화를 신으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물었는데 화장실을 다닌 실내화로 교실에 들어오는 건 찝찝하다는 놀라운 대답을 한다. 그렇구나, 너희들에게 교실은 집의 방이자 거실이었구나.



얼마 전 임시로 1일 수업을 맡으신 강사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실내화를 신고 들어오시는데 '선생님 여긴 맨발교실이고 제가 쓸고 닦고 다 한거라 실내화 신고 들어오시면 안됩니다'라는 생각은 가득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실내화에서 내려오는 일은 평범하지도 않을 뿐더러 수업 시작부터 당황하면 수업도 어려울테니 그냥 조용히 수업 후 교실 청소를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해보니 우습다. 불과 3주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던 맨발교실인데 신발 신은 동료교사를 보고 당황하고 있는 나라니.





보통의 교사가 보는 혁신학교 이야기를 연재해보기로 했다. 혁신학교에서 출발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일반 학교에 적용되고 있으니 좋은 나쁘든 알아볼 필요가 있으리라. 부디 우리학교 선생님이 이 글을 보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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