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치 Feb 27. 2023

100퍼센트의 벽

'완벽함'에 대해 생각하던 저녁이었다. 문득 무라카미하루키의 단편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가 떠올라 거실 책장을 뒤적여 오래된 책을 꺼냈다.


주인공은 어느 날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리게 된다. 한눈에 그녀가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임을 알아보았지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후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녀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을 걸었어야 한다는 글과 함께 짤막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 내용의 전부이다.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100퍼센트의 남자아이는 우리가 정말 100퍼센트의 인연일까 하는 의구심에 시험을 해보자며 헤어지고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가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100퍼센트의 인연이라면 기약 없이 헤어져도 분명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긴 채.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던 이 단편은 '100퍼센트‘라는 수치에서 오는 꽉 찬 만족감과 기적 같은 인연이라는 특별함에 매료됐었는데, 30대가 되어 다시 읽은 느낌은 사뭇 달랐다.

100퍼센트라는 빈틈없는 상태는 얼핏 완벽을 뜻하는 것 같지만 사실 언제라도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불안함을 지닌 수치이다. 100퍼센트의 그들이 서로에 대해 작은 물음표를 지닌 순간, 이미 균열이 가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100이라는 숫자는 어딘가 황홀한 구석이 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할 때면 능력의 100퍼센트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기실은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매번 나를 가로막았던 것은 외부의 어떤 방해가 아닌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그 마음이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당장 제대로 해내라며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 단번에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었고, 잘 안되면 곧 심드렁해졌다. 결국 100퍼센트의 벽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일들은 수많은 0들로 남았다.


반면 제이는 시작한 것을 끝내 마무리 짓고 마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의 전시에서 그는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영상작업을 올린 적이 있다. 영상을 전문으로 배운 적도 없던 그는 충무로의 한 영상센터에서 하는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에 참여해 카메라 조작법에서부터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씩 배워가며 영화를 제작했다. 시나리오 집필에서 배우섭외와 촬영, 최종편집까지 이루어지는 영화 제작 과정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완성된 단편영화가 워크숍 상영회를 거쳐 미술관에 걸리던 그날 제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내가 줄곧 깨고 싶던 100퍼센트라는 벽을 허물고 나아가는 제이의 당당한 뒷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100이 되기 전의 수많은 아름다운 숫자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완성을 향해서 가는 각자의 숫자들은 용기를 가지고 나아감으로써 생기는 삶의 궤적들이었던 것이다.


자판을 두드리며 자음과 모음을 토독토독 엮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100퍼센트의 반짝거리는 벽은 탐스러운 트로피처럼 나를 위협한다.

여전히 낯선 길에서 버벅거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게 두렵지만 용기 내어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그것이 내가 만들어놓은 견고한 벽을 허물 유일한 방법이기에.

작가의 이전글 편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