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뒤늦게 찾아온 것에 보상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눈 소식이 잦다. 처음 한두 번은 오랜만에 내린 눈이 반가워서 창문에 붙어 사진도 찍고 눈 밟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했는데 지방 곳곳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적당히 좀 와주지 하는 원망이 들기도 한다.
눈 온 뒤 꽁꽁 언 바닥을 걷다 보면 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온천욕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언제부턴가 동네에서 대중목욕탕을 구경하기 힘들어진 요즘에는 더욱 간절해진다.
그렇다고 당장 온천 여행을 떠날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없어서 본가에 내려온 김에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모처럼 세신을 받을까 하는 마음에 세신사에게 준비해 간 지폐를 선불로 내민 뒤, 대기번호를 받는 것까지 혼자 하고 나니 어쩐지 어른이 된 기분이다.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오가면서 시간을 때우는 게 지겨워져 탕에 몸을 쏙 담근 뒤 손을 모으고 엎드려 고여 있는 물을 토옥 톡 건드리며 나누고 또 합쳐본다.
목욕탕. 나는 목욕탕에 관한 기억이 많다. 온천이 가까운 지방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라기보다는 외할머니와 엄마 두 분 다 목욕을 즐기셨기 때문으로 기독교인 친구들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에 가는 게 당연했다. 동네 대중탕에서부터 공기 좋은 산 아래에 위치한 유명온천, 호텔에 딸린 사우나까지 크고 작은 온갖 대중목욕탕을 번갈아 다녔던 것은 어린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이다
원체 깔끔하신 성격의 할머니는 목욕탕에서 그날 받은 첫 물로 목욕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시간을 구별할 수도 없는 어두컴컴한 새벽 나절 할머니 손에 이끌려 눈도 채 뜨지 못하고 갔던 동네목욕탕.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을 하나 둘 세다 보면 어느새 목욕탕 입구에 다다랐다. 성인이 된 지금은 목욕탕이나 찜질방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만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에게 목욕탕은 탕에 들어가 물장구를 몇 번 치다 보면 흥미를 잃게 되는 곳이었다.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할머니가 들려준 바나나 우유를 쪼옥 쪽 빨고 있으면 어느새 세신사로 변신한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할머니는 목청과 기운이 꼭 수탉 같은 분이셨는데 목욕탕에서 내 이름을 불릴 때면 평소보다 두 배는 우렁차게 퍼지는 소리에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긴 생머리를 돌돌 말아 칫솔을 비녀 삼아 올리면 세신 받을 준비는 끝. 아무도 없는 세신 침대에 날 눕힌 할머니는 프로 세신사처럼 때타월을 든 손을 힘차게 움직이셨다. 아니 힘은 또 얼마나 세셨는지(지금도 팔씨름은 할머니에게 못 당한다) 세신을 끝내면 벗겨진 게 때인지 나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손녀딸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때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씻기고 나면 할머니는 그제야 본인 몸을 씻기 시작하셨고 그 틈에 나는 미꾸라지처럼 혼자 목욕탕에서 도망 나오기 일쑤였다.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옷만 간신히 입고 김이 폴폴 나는 목욕탕에서 나오면 아직 멀리 가지 못한 새벽의 공기가 골목길에 남아있다. 숨을 몇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사이 목욕탕의 온기는 사라지고 갑자기 혼자라는 공포가 찾아온다. 골목길 중간 즈음의 모퉁이 집에는 당시 내 키만 한 셰퍼드가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혼자 골목을 지날 때면 개 그림자가 두 배는 커 보였다. 컹 컹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숨이 찬 지도 모르고 집을 향해 내달리는 사이에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얼어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챙 챙 들린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안방 침대로 직행한다. 아직 잠기운에 취해 있는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잠결에서 뻗어 나온 엄마의 손이 나를 어루만지면 얼어있던 머리카락들이 금세 부서지며 녹는다. 골목을 달려오며 몸에 붙은 한기가 따끈한 손길에 눈 녹듯 사라진다.
어쩌면 지금도 나에게 겨울의 모습이 그리 춥지만은 않은 것은 목욕탕 안을 가득 채우는 수증기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겨울, 목욕탕의 추억 때문이 아닐까.
"4번! 4번 언니 이리 오세요!"
손목에 걸린 대기표의 번호를 호명하는 소리가 목욕탕에 울려 퍼진다. 지루했던 기다림이 끝나는 반가운 소리에 몸을 일으키면서, 세신이 끝나면 바나나 우유를 꼭 사 먹어야지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