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사람이 가득 모인 광장에서 군중들의 열기에 섞여 달뜬 얼굴로 카운트다운을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새해 첫 일출을 보겠다며 새벽부터 산으로 바다로 떠나기도 한다.
혹은 최대한 고요한 실내(보통은 집이다)에서 술 한잔을 기울이며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다가 자정이 가까워올 때쯤 겨우 보신각 타종행사 중계 영상을 틀어놓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3년 만에 치러지는 타종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아마도 해가 바뀌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새해 처음으로 듣는 곡’이 그 해의 운을 정한다는 말 역시 근거는 없지만 괜히 기대보고 싶은 것 아니던가.
어딘지 모르게 들떠있는 분위기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2월 1일부터 하루에 하나씩 한 해를 되돌아보는 질문에 답하는 챌린지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2022년 동안 인상 깊었던 ‘올해의 OO’ 시리즈를 정리하는 글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온/오프라인에 가득한 연말연시 분위기에 조용히 취해 나도 올해 읽을 첫 책을 골랐다. 마침 북디자이너인 친구가 근래에 작업한 책이라며 선물한 책의 제목이 눈에 박혔다.
박혜수 작가의 작업노트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설치미술가이자 기획자, 작가로 활동 중인 시각예술가로 소개된 박혜수 작가는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심리적 접근 방식의 설문 조사와 분석을 거쳐 작품화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책은 그가 작업을 진행하며 느꼈던 것들이 당시 설문자들에게 했던 질답들과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귀에 익은 이름에 작업을 훑어보니 나도 한두 번 전시를 본 기억이 언뜻 스쳤다. 본인 스스로도 호기심이 많고 직선적이라서 엉뚱한 질문으로 남들을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는 작가는 첫 챕터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 왔다.
“당신은 어떤 꿈을 포기했나요?”
꿈에 대한 질문은 ‘넌 꿈이 뭐니?’로 시작해서 나이가 들면서 ‘커서 뭐가 될 거니?’ 또는 ‘뭐 해 먹고 살 거니?’ 등의 변형 기출문제처럼 끊임없이 받아왔지만 ‘포기한 꿈’에 대한 질문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가졌던 꿈은 쑥스럽지만 ‘위인전에 실리는 것’이었다. 품에 늘 책을 끼고 다녔던 어린 시절, 책을 사놓는 족족 읽어제끼던 나의 독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엄마는 퇴근길에 부지런히 책을 사다 나르셨다. 각종 고전 도서와 프뢰벨 동화 전집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 한편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한 <위인전>은 어린 나에게 이름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위인’이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대체 얼마나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이어야 책에 실릴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맹랑하게도 첫 꿈이 된 것이다.
막연하고 거창한 ‘위인’이라는 꿈이 글을 쓰는 ‘작가’로, 나아가 초등학교 때 만화책을 접하면서 글보다 그림이 좋아진 이후로 ‘만화가’와 ‘화가’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꿈을 묻는 빈칸을 열심히 채워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 전공을 하면서는 화가로 산다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음을 깨달으며 오래 품어온 꿈을 삶의 뒤편으로 휙 던져놓고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니 바빠서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신입 때에는 구르고 깨지느라 바빴고, 연차가 쌓였을 때는 일이 넘쳐나서 바빴다. 그 사이 그림에 대한 열망은 점점 사그라들어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로서의 나’에 애써 만족하게 되었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화가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의 꿈은 뻔하게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되어있었다.
내 꿈의 변천사를 듣는다면 혹자는 현실에 치여 꿈이 깎이고 뭉뚱그려졌다고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꿈이 직업이 아닌 삶의 태도나 상태라고 느끼게 된 이후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꿈이다. 게다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포기한 꿈에 대해서 훑어나가다 보니 문득 그 많은 꿈들은 어디로 갔을까 문득 행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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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된 것은 반쯤 충동적이었다. 쭉 미뤄오다가 작년 연말에야 시작한 어설픈 글쓰기를 이어가고 싶었고 적당한 플랫폼을 찾아 둥지를 틀자 생각했던 것이 브런치 작가 신청까지 오게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전 주의 목요일 즈음 신청했던 것이 주말을 지난 월요일이 되어 작가 선정 축하 메일이 왔다.
이미 브런치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격려를 해줬지만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지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외근이 끝난 뒤 남편과 집에 돌아오며 이런저런 수다를 하던 끝에 슬며시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다고 말했다. 브런치에 대해 알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남편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제 일처럼 기뻐했다. 이 정도로 기뻐하고 축하할 일인가 싶어 겸연쩍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나도 같이 웃어 보였다.
“이제 그림만 그리면 되겠네!”
뜬금없는 그의 말에 영문을 몰라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나에게 남편은 잊고 있던 연애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 내게 내밀었다.
먼지 쌓인 기억을 탈탈 털자 지금보다 족히 5년은 더 어렸을 내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나는 말이야, 그림 그리고 글 쓰는 할머니가 될 거야. 그렇게 행복하게 나이 드는 게 내 꿈이야.”
어쩌면 내가 포기한 꿈은 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삶의 한 구석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