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치 Jan 16. 2023

내 영혼의 나이

2023년 1월 달력은 벌써 보름도 훌쩍 넘겨 구정 설을 바라보고 있다. 연말부터 반짝 세일처럼 여기저기서 남발했던 ‘새해‘라는 말은 이제 지나간 단어가 되어 일상으로 스며들었지만 그럼에도 도통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한 살 더 먹은 내 나이이다.


나이라는 건 한 살 더 먹는다고 갑자기 겉모습이 달라지거나 철이 드는 것도 아닐진대, 낯선 곳에서 자기소개라도 할라치면 괜스레 주춤거리는 이유가 되는 게 이상하다.

우리나라도 만 나이 통일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 나이를 더해 셈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은 아직 남아있지만, 더 이상 젊고 어리지는 않은 나로서는 ‘제 나이는 만으로…’라고 운을 떼는 게 더 구차하게 느껴진달까.


‘나이듦‘을 가장 투명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몸이다. 30대가 되자 말짱했던 몸이 거짓말처럼 구석구석 아프기 시작했다. 크게 아픈 적은 없지만 몸 컨디션이 안 좋아 병원에 찾을 때마다 들어본 적 없는 자잘한 병명들을 하나씩 꼬리표처럼 달고 오는 유쾌하지 않은 경험들이 쌓였다.


마침 미뤄오던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아직은 젊은 나이’라는 자격을 부여받아 기본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항목 몇 가지를 추가해 검사를 받기로 했다. 접수를 하고 검진복으로 갈아입자 순차적으로 가야 할 행선지가 정해졌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접수지 상단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OOO(여), 3n세’


복잡한 자아를 가지고 매 순간 고민하며 살아가는 나라는 한 사람이 말 그대로 ’3n세 여성의 몸‘으로만 치환되는 순간이다.

할당된 키로수를 달려 검사소에 온 자동차처럼 부위별로 나누어 기능은 제대로 하는지 또는 노후화된 장비에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는지 찬찬히 점검된다.

검사가 끝나면 결과에 따라 ’간단한 재정비가 필요함‘, ’ 엔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정밀 검사를 요함‘ 등의 기록이 적힌 결과지와 함께 앞으로의 주행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아무리 내가 풀로 액셀을 밟고 달릴 준비가 되어있어도 내 몸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상상하면 역시나 기분이 별로다.


나이가 드는 건 생명이 태어나 당연히 겪는 수순일 뿐인데 사람은 왜 때때로 억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문득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에서 유독 발길을 잡아놓았던 드로잉이 생각났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거친 고목 같은 늙고 지친 몸이 힘 없이 기대 누워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신체에서 유일하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그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아마도 그의 젊은 시절로 보이는 형체가 둥둥 떠올라 있다. 그는 마치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양새로 손을 대면 따뜻한 피부가 손에 잡힐 것처럼 또렷하다. 생기가 가득한 표정은 늙은 육신과 대비되어 자못 사랑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나는 들어갈 공간이 충분히 있도록 나 자신을 비워뒀다>, 2009, 네팔 종이에 잉크, 색연필, 188x257.8cm

그림 앞에서 나보다 먼저 나이 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고관절 수술을 한 뒤로 외출이 어려워진 외할머니께서 며칠 전에 집 안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팔꿈치 뼈가 골절됐다.

찰나의 사고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도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으셨던 것 일테지. 어린아이라면 한 번 크게 울고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났을지도 모를 사고는 안 그래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오른팔을 묶어버렸다.

구순이 가까운 연세와 달리 여전히 강건하고 맑은 정신을 가진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뵐 때마다 조금씩 작아져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아주 아주 작게 줄어들어 사라질까 봐 무서워 쪼글쪼글한 얼굴을 가만히 쥐고 눈을 쳐다본다. 눈망울을 도르륵 굴리며 마주한 따스한 눈빛은 내가 어릴 적 올려다본 눈과 똑같다.


그런가 하면 과거의 어느 날, 엄마는 서른아홉 이후로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겠다고 주변에 선언을 했다. 때문에 오빠와 나는 엄마가 실제로 서른아홉을 넘긴 이후로도 한참 동안 생일초를 ‘39’로 맞춰서 불었다. 지금은 없어진 우리 집 풍습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39라는 숫자는, 엄마의 영혼이 머물렀던 나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의 신체는 영혼의 나이 드는 속도와의 간극이 너무 큰 것은 아닐까. 만약 몸도 영혼의 속도에 맞춰 나이 들어간다면, 세월 앞에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느리게 찾아오지는 않을까.

마지막 순서인 위내시경을 받기 위해 들어간 검사실에서 딱딱한 침대에 모로 누워 아득해지는 약기운을 느끼며 지금 내 몸에 갇힌 영혼의 나이는 몇 살에 머물러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포기한 꿈들은 어디에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