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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ghteoff Dec 28. 2020

손은 두 개지만 토끼는 한 마리만

멀티가 안 돼요, 집중력도 안 돼요




언젠가 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멀티플레이에 능한 연예인을 본 적 있다. 편한 차림의 그는 거실에서 TV로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태블릿 PC로 시트콤을 틀어놓고, 발마사지를 하면서 종종 휴대폰도 봤다. 동시에 커피도 마셨다. 그러다가 부엌으로 가 과일과 채소를 몇 개 집어먹기도 했다. 여전히 TV는 나오고 있었고, 태블릿 PC도 켜진 상태였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또다시 거실로 분주하게 다니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원래 한 자리에 가만히 못 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습관이라고 했다. 나와 정반대라 신기했다. 나는 이런 멀티플레이가 잘 안 된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행동만 가능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엊그제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을 VOD로 보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럼 나는 VOD를 일시 정지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통화가 어렵다고 해야 했다. TV 시청과 통화를 동시에 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언니와 같이 보느라 중지를 못 해서 어쩔 수 없이 일단 전화를 받았다. 확인해보니 그룹 통화였고,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친구가 이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나도 거기에 껴서 얘기를 하며 능력껏 TV를 봐야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그게 안 되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얘기에 집중하면 TV가 눈에 안 들어오고, TV에 몰입하자니 친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놓친 채 전화도 VOD도 아쉽게 종료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심한 게, 평소에도 TV를 볼 때 누가 옆에서 말을 걸거나 주변이 소란스러워도 집중하기 어렵다. 심지어 눈은 TV를 보고 있어도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지면 금세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고 만다. TV나 유튜브 영상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때도 내가 얼마만큼 집중하느냐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속독이 안 된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TV나 유튜브 영상에 몰입하고 있을 땐 누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못 듣는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귀가 닫힌 것 같다. 이건 주변에서(특히 가족들이) 제발 좀 고치라고 해서 찾은 방법이 앞서 말한 일시정지를 하고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나름 해결법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멀티플레이를 훌륭하게 해 보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집중력이 좋으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브런치에 내 자랑은커녕 단점만 줄줄이 얘기하는 것 같아 민망하긴 한데, 사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멀티는 안 되는데 집중력도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다. <1박 2일>이 한 편당 1시간 30분짜린데, 잠깐 멈춰놓고 중간중간 휴대폰을 봐야 해서 한 편 보는 데 2시간은 잡아먹은 적도 있다.


또 올해 여름엔 홈트를 했었는데, 그땐 더 심했다. 1시간도 안 되는 영상을 따라하는 데 2시간은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운동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쉬는 시간 10분, 잠깐 쌓인 메신저 확인하고 답장하는 데 20분. 세차게 뛰는 심장 가라앉히는 데 5분. 그냥 여기까지만 할까 고민하는 시간 5분. 힘들다고 우는 댓글 구경하기 5분 등등. 쫌쫌따리 자투리 시간이 많아서 운동 효과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런 이상한 성향은 일상에서 더욱더 두드러진다. 평소 음악 감상이 취미라 노래를 틀어놓고 할 일을 하는데,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감상에 집중하느라 속도가 더디곤 한다. 차라리 집안일이면 귀로 들으면서 손발만 열심히 움직이면 되니까 괜찮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듣다 보면, 앞서 말했던 '<1박 2일> 보며 통화하기'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꼬이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하는 것.


결국 나는 차선책으로, 한 곡 반복을 택했다. 계속 같은 노래를 들으면 귀에 익어 어느 정도 흘릴 수 있기에, 필요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도 너무나 익숙한 노래를 한 곡 반복으로 틀어놓고 글을 쓰는 중이다. 데이먼스 이어의 Auburn.




나 같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한 가지' 생각만 하고 '한 가지' 행동만 하는 건데, 청개구리인지 뭔지 이렇게는 또 심심하다. 음악 없이 책을 읽으면 지루하다. 글을 써도 왠지 밋밋하다. 밥 먹을 때 특히 그렇다. '밥친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신성한 식탁에 아이패드를 올려놓고 유튜브를 돌며 밥친구를 고른다. 당연히 멀티플레이가 미숙한 나는 그냥 밥만 먹을 때보다 식사 시간이 세 배는 길어진다. 이 부분도 가족들이(특히 엄마가) 지적하는 습관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누가 나에게 공감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내 생각에 나는 예민하지 않고 단순한 성격인데, 이럴 땐 까다로워서 영 피곤하다. 고칠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더 힘들다. 난 아마 관짝에 들어갈 때도 지루하지 않게 배경음악을 깔고 싶어 할 것이다. 웅장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뭐 그런 거. 사실 나는 내 장례식에 좋아하는 노래를 스피커로 틀면 어떨까, 하는 로망 아닌 로망이 있다. 과연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상상 속의 내 후손들에게 부탁할 예정이다. 혹시 아는가? 노래 듣느라 정신 팔려서 저 세상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다시 살아날지.


오늘도 별 것 아닌 얘기를 장황하게 했다. 요약하자면 '두 손으로 토끼 한 마리 간신히 잡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더군다나 국가번호마저 '82'인 빨리빨리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멀티플레이가 능숙하지 못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고생스러울 수 있는 나의 동지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련다. 멀티를 못하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고, 또 적어도 머리 복잡할 일은 별로 없으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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