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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교제와 절제

by cha

그래서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됐냐고?

처음 마음이 생겼던 고등학교 1학년을 지나, 함께 회장단을 하던 2학년, 수능으로 고군분투하던 3학년 시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먼저 고백을 했다. 그렇게 3년의 짝사랑이 끝났고, 그로부터 8년 뒤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은찬이는 내게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내가 오랫동안 마음을 품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시간을 돌아보며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학창시기의 절제가 오히려 관계를 이어지게 만든 셈이다.


나는 원래 이성관계에서 절제력도 부족하고, 상처도 많은 사람이었다. 공립 중학교에 다녔을 때 사귄 첫 남자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아 거식증에 걸리기도 했고, 이후에는 고등학생 오빠와 사귀다가 큰 상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 내가 3년 간 감정을 눌러두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닌 대안학교는 생활 전반에서 절제를 요구하는 곳이었다. 핸드폰 사용이나 간식도 제한되어 있었고, 용돈도 정해져 있었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기숙사 생활 속에서 개인의 욕구보다 공동의 질서를 먼저 고려하는 법을 배웠고, ‘이성교제 금지’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규칙들이 단순한 통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선생님들은 규칙을 지키게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했다. 성교육이나 노작교육 같은 수업이 비중 있게 다뤄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 점은 공립학교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공립학교는 정해진 교육과정 안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이나 태도를 변화시키기까지는 어렵다. 특히 '절제력'은 지식처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되어야 몸에 남는다. 그러니 수업시간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는 그 경험을 충분히 만들어내기 어렵다. '핸드폰 사용 절제'와 같은 또래 환경의 영향을 받는 요소들 또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유지되기 힘들다.

반면 비인가 대안학교는 커리큘럼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어, 지식 전달을 넘어 생활 방식까지 교육의 범위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훨씬 큰 영향을 준다.

물론 생활습관에 대한 교육은 가정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정이 ‘설명하고 권유하는 공간’에 가깝다면, 학교는 ‘같은 기준을 함께 적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혼자서는 지키기 어려운 기준도 공동체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그 반복 속에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안학교를 통해 ‘감정과 선택을 분리하는 힘’을 배웠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과,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연애와 학업 사이에서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안학교에서 배운 것의 대부분은 교과서 속 지식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가 지금의 관계와 삶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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