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두는 침묵했다
강약약강인 사람이 싫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는,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걸 몰랐다.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누군가에게 '약'이었다. 화를 잘 못 내고, 강단도 없고, 갈등을 싫어하는 내 소심함은 누군가에겐 착함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할 수 있는 약함이었다.
새로운 신입사원 A가 왔다. 2년을 다른 부서에 파견직으로 있다가 우리 팀으로 오면서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 전 부서 사람들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새벽 근무가 잦아 직접 일하는 걸 볼 수 없는 부서에 있었다. 자기가 근무시간에 의자를 펴놓고 잤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는 사람이라는 걸, 2년 동안 아무도 몰랐다. A는 나와 내 동기사원에게만 자랑처럼 그런 이야기를 했다. 더군다나 목소리가 유독 크고 말이 많은 A는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 나 또한 장난기 가득 다가오는 그 사람을 정색하며 밀어낼 수 없었다.
A는 과장님의 편성운행을 함께 담당할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주말이 껴 있는 금요일이 그들에겐 매우 바쁜 날이었는데, A가 오기 전까지 과장님 혼자 모든 업무를 하는 것이 벅차 나와 동기사원이 주말 운행을 돕곤 했다. A가 오고 난 후에도, 우리가 해야 하는 주말 업무는 여전했다. 과장님을 돕고자 하는 좋은 마음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2021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신규 개편 브리핑과 종무식 등의 행사가 겹쳐 정신없는 금요일이었다. 나는 토요일 운행을 도왔고 토요일 운행표는 오후 5시까지 끝내야 했지만, 도무지 내 일정으로는 불가능했다. 브리핑 종료 시각이 4시로 예상되자, 어쩔 수 없이 브리핑을 듣지 않는 A에게 토요일 운행을 부탁했다. 자기는 월요일 운행을 해야 하니, 그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운행 일은 애초에 그의 일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알겠으니 브리핑 중간에라도 내려가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얼마 뒤, 과장님께 얘기를 들었으니 자신이 하겠단다. 2시간을 예상했던 브리핑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났고, 급히 내려가 토요일 운행을 하겠다 했지만 '아 제가 그냥 할게요'라고 말하는 그의 기분은 이미 상한 뒤였다. 그때부터 옆자리에서 끝도 없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씨.. 토요일 거 때문에 월요일 거 시작도 못했네.' 불평은 동기사원과 같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퍼졌다. '나 바쁘니까 건들지 마요. 할 거 시작도 못했으니까.' 옆에서 듣고 있는 내 기분도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그가 내 옆의 비어있는 공용 자리에 왔다가 컴퓨터가 켜지지 않자 자판기를 부서질 듯 두드렸다. '아 씨 이거 왜 안돼 진짜 짜증 나게..'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에는 상사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행동에 침묵했다.
결국 나는 바보 같이 그에게 사과했다. 사과를 할 때 즈음엔 그의 기분이 풀려있었다. 이유인즉, 과장님이 결국 A의 업무인 월요일 운행을 하겠다고 나선 덕이었다. 사과를 하고 돌아서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도와주는 것뿐인데, 할 일을 못해서 미룬 느낌이었다. 되려 나와 동기사원이 돕는 것에 감사하고, 개인 업무가 있어 못 도와준다면 마땅히 자신이 하는 게 맞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이토록 화를 내니, 마치 내가 잘못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 또 터졌다. 1월 1일이 되기 20분 전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A가 단톡방에 '인터넷 편성표 안 하셨어요..?'라는 톡을 보냈다. 운행표를 마무리하고 진행되는 인터넷 편성표였기에 토요일 운행에서 손을 뗀 나는 진행사항을 몰랐다. 더군다나 인터넷 편성표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시킨 줄 알았다. '토요일 거 마무리 부탁해요'라고 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는데. 결국 커뮤니케이션 미스인데, 마치 내 잘못처럼 이 시간에 모두가 보는 톡방에 올리는 건 무슨 심보일까. 인터넷 편성표는 5분도 걸리지 않는 업무였다. 결국 과장님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고 그는 '아니에요ㅎㅎ 제가 할게요!'라며 태도를 바꾸었다. 불성실한 것을 죄악처럼 여기는 나인데, 내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 분하고 억울했다.
A가 화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자신의 계획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화를 이런 분노로 표출하며, 들으라는 듯 보라는 듯 위협적인 언행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까지 그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 화나 보이는 일은 몇 번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자문해야 하는 언행을 내가 자문하고 있는 게 우스웠다. 그는 실컷 화를 내고, 상대방의 연말과 연초를 망가트린 채 행복한 새해를 맞이했겠지. 가장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그의 행동에 겁을 먹고 만 내 모습이었다. 나이 많은 후배에게 당하고 있는 꼴이 볼 만했다.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내가 강단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때 사과를 한 것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했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 때문에 내가 우는 것이 속상해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같이 화내 주기를 바랐던 나로서 서러움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순함'을 '약함'으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결국 상대를 바꿀 수는 없으니, 상처받는 내가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시계는 막 22년의 첫 번째 시간을 알렸지만, 내 모든 생각은 21년의 마지막 날에 묶여 있었다. 해가 지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결국 우리의 시간은 이어지는데. 나는 다음 주 월요일 A의 얼굴을 다시 봐야 하고, 회사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다들 침묵하고, 나는 여전한 약자일 텐데.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모든 새해 약속을 취소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새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