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 건 열정이었을까 인정이었을까
자족하지 못하는 불
회사에 대한 내 열심은 순수한 열정이었을까 인정을 위한 수단이었을까?
1년 반 동안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일이 주어졌을 땐 그 이상을 하려고 했고, 팀 내 자잘한 행사나, 작은 사무용품 하나, 하다못해 메뉴 고르기, 생일파티, 식사 배달까지 남들의 그늘 아래에서 기꺼이 감당했다. 후임이 있었지만, 차라리 내가 하는 게 편하니 모두 자발적으로 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눈물로 출근할 만큼 지쳐버린 건 왜일까. 너무 활활 타오른 나머지 다 녹아 일그러져 버린 양초가 된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타오르는 것 자체로 기뻐할 수 있다면, 이처럼 바닥에 눌어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싶었던, 누군가에게 '너 따뜻하구나' 인정받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늘 불만스러웠던 건, 인정을 원했기에 열정을 소비해도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안 하는 걸까요' 불평했지만 사실 그 말의 기저엔 내 생각을 인정해줄 조직이, 그런 조직에서 느끼는 내 존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내 성과 없는 시간들이, 나의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그래서 부러웠다.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같은 월급을 받아도 프로그램 스크롤에 이름이 남는 사람들이. 그래서 지쳤다. 자족하는 것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족하지 못하는 불은 어느새 커다란 불길이 되어 주변을 태워버린다. 어쩌면 내게도 버거운 이 열정이 팀장님과 팀에게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함께 맞춰나가야 하는 팀의 페이스에 과한 페달링을 하려고 하니, 나 혼자 지쳐 나가떨어진 것일 수 있다. 정말 주어진 일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시선으로 임했더라면, 지금처럼 앞뒤 없이 내달리다 전복되어버린 불도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필시 스스로 풀어내야 할 문제이다. 인생은 순간이 아닌 긴 과정의 시간에서 자란다. 후에 내가 거둘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내가 뿌린 열심의 열매일 것이다. 그러니 결과 없는 시간 속에서 좌절하고 무너져도, 그 모든 시간을 걸어내는 내 발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매일 아침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인사를 건네며, 매일 저녁 지친 나에게 내일의 기대를 속삭이며 조금씩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이렇게 두루뭉술한 마침표로 마무리되는 건, 이 다짐이 일평생 해내야 할 긴 과제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엔 해낼 것이다. 나만이 내 영화의 주인공이니까. 나만큼 내 영화를 사랑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