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퇴사 바람이 분다
2주 차이로 입사한 팀 내 유일한 동기 B가 퇴사를 했다. 삼십 대 초반인 그는 친구들은 대리나 과장을 달고 있을 때, 자신은 여전히 파견직이라는 점을 힘들어했다. 팀장님께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아냈지만 그는 그것이 팀장의 권한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B는 그의 후임을 뽑기 위해 인사팀에서 올린 취업공고에서 자신의 자리가 여전히 '파견직'인 것을 보았고, 이 자리는 애초에 정규직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음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서둘러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A 때문이었다. 앞서 A와 B는 함께 어울리며 나를 따돌렸다. 그러나 한 달 사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A와 B의 사이가 크게 틀어지고 만 것이다. A와 B는 늘 팀 사람들을 두고 따로 점심을 먹었는데, 하루는 B가 팀 사람들과도 밥을 먹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A는 '그러세요~ 형은 늘 사람들 눈치만 보니까.'라며 비꼬았고, 그 이후로 B를 완전히 무시하며 배척했다. 그는 휴가 중인 B에게 회사 번호로 수없이 전화해 급하지 않은 업무를 독촉했으며 단톡방에서 쪽을 주겠다며 B의 업무상 실수를 정정해주는 척 여러 번 글을 남기기도 했다.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도 A는 B를 자주 놀렸다. 한 번은 주소록을 보여주며 본부 내 유일한 파견직인 B에게 '이게 바로 형의 위치예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라며 낮잡아 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형은 남의 눈치만 보니까' 소리를 듣고 괴롭힘을 당하니 B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B는 퇴사를 하기 전 내게 이 모든 이야기를 전했다. 탈모가 있는 상사를 타코야끼라고 부르며 비아냥댔다는 것, 만만한 사람들에게 입고 제한시간을 두고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마음에 들지 않은 부서의 자료를 의도적으로 파기하는 등 업무상 불이익을 주었다는 것 등 B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B는 이 일을 공론화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는 회사의 제도와 구조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회사에 퇴사 바람이 불고 있다. 늘 한 번씩 찾아오는 바람이라고 한다. B처럼 1년 근무한 사람부터 10년을 넘게 근무한 사람까지, 다들 한꺼번에 나가버린다. 회사는 나가는 사람의 발을 잡지 않는다. 어련히 그 시기겠거니 하며 넘긴다. 이런 바람은 옆사람의 머릿결도 흔들어댄다. 회사의 침묵은 다음 퇴사자의 결심을 굳힌다.
부모님도, 남자친구도 내게 그만 떠날 때가 됐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고 얻을 게 없다면, 1년의 경험으로 충분하단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꿈을 향해 떠나고 누군가는 도망치듯 떠난다. 사람도 성과도 일도 무엇 하나 욕심껏 이룬 것이 없지만, 쫓기듯 퇴사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목적을 잃어 도망치는 퇴사가 아닌, 목적을 위해 하는 퇴사를 원한다.
그러니 A도, 지긋지긋한 업무도, 발목을 끌어당기는 우울도 나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묘목을 기르는 시간이니, 가장 좋은 날을 골라 옮겨 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