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선생님 Oct 12. 2024

학급문고 말고 일일 작은 도서관.

너희가 좋다면, 선생님도 좋아!

> 사랑하는 나에게 <

아이들과 지속해서 소통한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지? 몸은 축나도 마음이 흡족한 길을 선택한 너의 결정을 지지해. 아이들 요구를 다 들어주기만 하는 물렁한 교사라며 자책하지 마. ' 



  국어 시간과 연계하여 '작은 도서관 활동'을 준비했다. 각자 집에서 소개할 책을 가져와서 학습지에 책 소개문을 작성한 뒤, 작성한 글을 읽으며 서로 가져온 책을 소개할 계획이었다. 아이들마다 학습지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차가 컸다. 빨리 학습지를 마친 아이들을 위한 다음 활동이 필요했다. 급한 대로 학급문고에 있는 책을 골라 읽으며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자고 안내했다. 아이들은 학급문고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책 읽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수업시간은 많이 남은 상황이고 수업 활동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책을 봐도 괜찮은 친구들은 집에서 가져온 책을 교탁 위로 제출하게 했다. 처음에는 5권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 남이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걸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책꽂이에 아이들이 제출한 책을 세워서 제목이 잘 보이게 꽂았다. 그리고 사서선생님으로 변해서 아이들에게 활동을 안내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무무교실의 일일 작은 도서관 사서입니다. 학습지를 다 작성한 친구들은 작은 도서관 책을 빌려서 볼 수 있답니다. 오늘의 도서관은 우리 반 친구들이 집에서 가져온 특별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차례를 지켜서 책을 빌려주세요. "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자 내 마음에는 '됐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지루했던 수업시간에 '활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일 작은 도서관'에 아이들의 관심이 커지자 갑자기 자신의 책도 친구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며 책을 제출하는 학생들이 생겼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학급문고에서 진짜 재미있는 책으로 5권을 자신이 선별해 왔다며 이 책들도 '일일 작은 도서관'에 꼭 꽂혀야 한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종이로 만든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알고 보니 책 대여/반납 때 필요한 바코드 기계였다. 나는 그 친구가 만들어준 바코드로 더욱더 실감 나는 '사서선생님'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학습지를 붙잡고 늘어지던 아이들도 '일일 작은 도서관'에 오고 싶어서 학습지를 빨리 완성해 왔다. 학습지에 작성한 글을 발표하는 활동은 어느새 사라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의 책을 이미 소개하고, 서로 책을 바꿔가며 자발적으로 발표와 독서를 하고 있었다. '일일 작은 도서관' 책을 다시 책주인에게 돌려주며 도서관 문을 무사히 닫았다. 아이들은 도서관 문을 닫지 말라며 아우성쳤다. 내일도 또 하자고 나를 졸랐다. 매일 할 수는 없지만 언제 또 교실 속 작은 도서관 문을 열면 좋을지 학급회의 때 정하자며 아이들을 달랬다.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아이들의 요구는 많아진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과는 별개로 회의감도 밀려온다. '괜히 작은 도서관 놀이를 해줬나. 그냥 억지로라도 학급문고 책을 빨리 가져와서 조용히 책을 읽게 할걸. 너무 아이들의 말을 많이 들어줬나. 선생님의 권위가 너무 없어 보였을까. 너무 피곤하네. 계획대로 아이들이 학습지를 발표하는 활동을 했으면 내가 말하지 않고 쉴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다음에도 '일일 작은 도서관'을 열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면 나도 좋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나답게 우리답게 교실을 만들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