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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선생님 Nov 13. 2024

그 자체로 빛나.

아이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보이는 세상 2.

> 사랑하는 나에게 <

' 나는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 내가 나여서 감사합니다. ' 


  나는 매일 아침 칠판에 손편지를 적는다. 매일 쓰다보니 가끔은 글감이 떨어지는 날도 있다. 그래서 멋있어 보이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적기도 한다. < 여러분은 빛나는 존재예요. 오늘도 빛나는 하루를 만들어봅시다. _11월 12일 손편지> 이렇게 큼지막하게 칠판에 편지를 쓰고 오늘도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정환*이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 선생님, 빛나는 하루는 어떻게 만들 수 있어요? "

" 음... 그러게... 정환이가 한 번 생각해 보고 알려줄래요? "


  이렇게 나는 오늘도 9살 현자를 만났다. 단순한 손편지인데 아이들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9살 현자님들은 꼼꼼하게 살펴보고 배움의 장을 스스로 열어주신다. 나는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문구라서 어디서 보고 옮겨 적어본 것인데, 내 부족함을 9살 현자님들은 일깨워주신다. 정환이 덕분에 모든 아이들은 빛나는 하루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물론 긴 담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잠깐 아침 시간에 나눈 대화로 끝났다. '빛나는 하루'라는 대화 소재는 '흔한 남매'시리즈 책을 이길 수 없었다. 아이들은 '흔한 남매' 책에 빠져들었고 정환이 질문에 답을 찾는 건 내 몫이 되어버렸다. 


  ' 빛나는 하루를 어떻게 만들지? 빛나는 하루를 만들어야 하나? 빛나지 않는 하루는 의미가 없나? '

퇴근 후에도 나는 질문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감옥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 오늘도 고고고 _석철원 > 그림책이다. 


<오늘도 고고고 _ 석철원 > 中 

" 우리는 걷고 뛰고 먹고 싸우고 울고 놀고 싸고 자고...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먹고, 싸고, 자면서 큰다. "


  평소 아이랑 그냥 재미있게 읽던 책이다. 오늘도 아이가 응가하는 장면이 보고 싶다고 나에게 가져왔다. 오늘은 이 책이 달리 보였다. 책에는 답이 있었다. 아이들은 특별한 노력으로 빛나는 하루를 만들고자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걷고 뛰고 먹고 싸우고 울고 놀고 싸고 자는 모습 그 자체가 빛나는 일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지 않은가. 살아있고 일상을 누리며 건강하게 지낸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그냥 그 자체 그대로 아이들이 잘 지내는 것이 빛나는 하루인 셈이다. 심지어 싸우고 울고 하더라도 그 시간도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성장의 시간이다. 


  답을 찾아 기쁜 마음에 <오늘도 고고고> 그림책을 내 출근 가방에 넣었다. 내일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 얘들아, 빛나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무엇을 할 필요는 없단다. 너희 그 자체가 빛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지. 그냥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지내고 잘 자며 잘 자라주면 돼. "라고 답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 이 깨달음도 때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깨닫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빛나는 하루를 어른의 시각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답을 안 채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아이들이 더욱 빛나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 오늘도 친구들과 투닥투닥 어울리며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아이들. 즐겁게 밥을 먹고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들. 콧물을 소매로 훔치며 100점을 맞기 위해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는 아이들. 모든 모습이 참 경이롭다. 자연스럽고 참 예쁘다. 아이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 그 자체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깨달음 덕분에 '사람은 그 자체로 빛나고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는다. 그리고 나 역시 특별히 무얼 하지 않아도 아이들처럼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임을 이제야 수용하게 된다. 나도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다. 


  혼자 깨달음을 묵상 중이던 나는 구영이*의 감사 일기장을 보고 흠칫 놀랐다. ' 내가 나여서 감사합니다. ' 혹시 이 아이는 자신이 그 자체로 빛난다는 것을, 빛나는 하루를 만드는 방법을 9살 나이에 벌써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다고 표현할 줄 알다니! 구영이의 일기를 따라 써본다. ' 나는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 내가 나여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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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1 *가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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