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미국인가 한국인가?
저의 직업 특성상, 영어권 원어민 강사들과 항상 같이 일하는 환경에 놓여있는데요. 제가 항상 드는 의문점은 왜 대다수의(70% 이상) 원어민 강사들은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이에요.
여러 경우가 있긴 하지만 보통은..
1) 한국어 말하기/듣기 능력 제로 = 체류 1년 이내 뉴비들
2) 한국어 말하기 제로 + 듣기 중하 = 체류 2-3년 정도..
사실 기준을 이렇게 나누어 놓긴 했지만 저의 주변 정보를 이용한 주관적인 데이터 일 뿐이고요.
상황에 따라 유창한 원어민 강사들이 물론 존재합니다. 하지만 주관적, 객관적인 의견으로 보았을 때도 한국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 강사들의 한국어 실력은 바닥을 치고 있죠.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어요. 왜냐하면 우리네 한국 사람들은 그 머나먼 미국과 영국, 호주에 가서 여행 한 번, 말 한 번 해보겠다고 (여행이든 워킹 홀리데이든) 잠깐이라도 영어를 배우잖아요. 실상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 영어 공부를 위해 쏟아부은 소중한 시간과 돈은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죠.
하지만 원어민 강사들은 경제적 활동을 위해 또는 여행을 위해 한국에 머무르면서 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있지 않는 것일까요?
대표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여 보여드리려 합니다.
‘ EF EPI 100여 개 국가 및 지역의 영어능력 지수 2019 ‘ 기준, 일본의 영어 실력은 53위로 ‘미흡’ 수준이에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죠.
반면 한국은 37위로 ‘평균’ 수준으로 나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일본어 구사 능력 및 체류 기간은 한국과 비교해 현저히 높은 편이에요. 왜 그럴까요? Why?
일본은 최근 2020년이 되어서야 전국 초, 중학교에 영어 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한국인이 듣는다면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사회 전반적으로 오랫동안 ‘영어를 할 필요가 없다’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2030 젊은 세대에게는 구직 활동 시 영어점수가 ‘굳이’ 필요 없어요. 회사에서도 필수 조건으로 하지 않고요. 영어가 필요한 업무에는 해당 언어 능력자를 채용해 책임을 맡기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문화적인 모든 것 ; 할리우드 영화, 음악, 게임, 만화, 책, 대학 전공 원서 등 ‘로컬라이징: 현지화’을 통해 빠르게 일본어로 번역이 되고, 그걸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있고요. 그러니 일본 사람들은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거죠.
그리고 이를 모르는 원어민들은 일본 어디를 가나 영어가 통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기피하며 도망가버리니 답답해서 라도 일본어를 배우게 되죠.
그런데 이런 현상의 재미있는 점은 외국인이 그 나라 언어를 배우면서 점점 문화를 이해하고 흡수하게 만들며, 그 나라에 더 애정을 느끼고 오랫동안 머무르게 만드는 이유가 되더라고요.
한국은 전혀 반대 상황이죠. 전 세계 기준 영어 실력이 ‘평균’이라는 사실에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당장 대학가만 가더라도 토익 990점 만점 받은 학생들이 널리고 널렸어요. 그 와중에도 취업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은 이미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이고요.
또한 내로라하는 기업과 회사들의 높은 영어 점수 요구는 디폴트 값이 되어 버렸고, 행여 길 가는 외국인이 무언가 물어보면 하나라도 더 정확히, 자세히 알려주려고 아는 영어 단어 전부 총집합해 말하기도 하죠. 영어를 잘 못하게는 죄도 아닌데 말하고 난 후엔 자신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자책하기도 하고요. 영어 공부 방법은 인터넷에 수 없이 많으며 많은 영화, 드라마, 오락쇼를 통해 공부하는 방법을 매일 공유하고 있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이래나 저래나 좋든 싫든 영어를 놓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잖아요.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이 느껴지시나요?
필요하면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원어민들은 우리나라에서 한국말을 할 ‘필요성’을 굳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것이죠. 불편하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저는 보통 업무적인 부분 때문에 원어민 강사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긴 해요.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 시엔 웬만하면 한국어로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저나 상대방이나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살짝 불편한 기류가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계속 지속하다 보니 오히려 원어민 강사들이 여러 가지 한국어 표현을 물어보기도 하고, 조금씩 한국어 공부가 된다며 되려 고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물론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도 굉장히 많이 보았어요.
다만 우리 스스로가 너무 영어 지향적인 사회에 잠식되어 우리의 아름다운 말을 잠시 잊어버린 건 아닌지.. 무엇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어떤 부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어야 하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름답고 멋진 우리 한국어,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알려주고 뽐내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