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는 나만 믿자.
한국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재미있게도 호주에 있을 때는 잘 들어보지 못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오히려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외국에서 한국인을 믿지 마라.’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나 또한 호주 생활 동안 그렇게 느꼈으니까 말이다.
이전에 언급했던 집에 살 때 마스터 오빠, 그의 여자 친구와 친해졌었다. 다른 두 악질들과는 다르게 그래도 마스터 오빠는 날 신경 써주려고 했던 게 고마웠다. 어느 날 마스터 오빠가 차를 중고로 팔겠다며 한인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브리즈번에 사는 어느 한국인이 사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조율 끝에 구매자는 차를 받고 난 후 입금을 하기로 했다. 차를 파는 당일 나와 마스터 오빠,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우리 모두 신나는 마음으로 차를 끌고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도착한 후 연락을 했는데 받질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의 집 앞까지 찾아갔고 계속 연락을 해보았지만 닿질 않았다. 결국 우리는 직접 그의 집에 올라갔다. 집은 활짝 열려 있었고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와는 연락이 닿질 않았고 우린 허탕을 치며 돌아갔다. 가는 내내 마스터 오빠는 속에서 천불이 났는지 연신 화를 냈다. 알고 보니 그 구매자는 그 상태로 이사(라고 하지만 도망)를 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이없고 황당한 경우였다.
또 다른 일화는 환전우대 사기 사건이다. 내가 직접 관여되었던 일은 없었지만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실제로 이 일로 내가 호주에 머무를 당시 브리즈번 살인 사건까지 두 차례 났었다. 보통 호주에 갓 오거나 한국에 돌아가기 전 여행 경비만 달러로 환전해서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은 호주에서 직접 사람을 통해 바로 한국돈으로 환전하는 방법인데, 환율 우대도 더 해주고 당장에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만 들어가도 한 페이지에 몇 개씩 그러한 글을 볼 수 있었다. 언급했던 살인 사건 역시 환전우대 사기로 돈을 먼저 취한 후 마당에 암매장했다고 했다. 나중에 이웃집 개가 찾아냈다고. 당시 이 사건 때문에 뉴스와 한인들 사이에서 한바탕 떠들썩했다. 나 역시 너무 무서워서 한동안 한인 커뮤니티를 들어가지 않았었다.
(실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영화 이병헌, 공효진 주연의 영화 ‘싱글 라이더’를 참고하면 된다.)
(영화 및 관련 사건 참고 블로그)
https://blog.naver.com/daraksil_hyejin/221795349834
물론, 당연히 다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국에서 혼자 살며 특히 돈과 관련된 일은 두고두고 조심하고 스스로 몸을 사려야 한다고 느꼈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방법도 더더욱 교묘해지고 있었다. 혼자 외국에 지내면서 외로운 것보다 이러한 사건 사고들이 쉽사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게 더 무서웠다. 나이가 적든 많든, 경험과 경력이 많든 상관없이 스스로 본인 상황을 자각하고 조심하며 사리 분별할 줄 알아야 했다.
금전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없는 경우도 많이 봤었다. 호주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만난 한 사람은 호주 영주권자였다. 건실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외모도 훈훈한 편이었다. 그는 본인이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말했는데 (당당히) 워킹홀리데이로 온 사람들만 만난다고 했다. 그래야 편안하게 서로 즐길 수 있고, 어차피 한국 돌아갈 사람들이니 진지할 필요가 없지 않냐며.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뻔뻔함에 놀랐고, 상식을 뛰어넘는 그의 가치관에 기가 찼다. 외국인 마인드라고 포장하는 그를 볼 때마다 뺨을 한 대씩 갈기고 싶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스펙과 영주권을 들이밀며 어필했다. 나중에는 그들이 한국에 돌아갈 때나, 재미가 없어지면 또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다녔다. 워킹홀리데이로 왔냐고 먼저 꼭 물어보면서 말이다.
또 다른 사람은 나 역시 그와 주변 친구들 다 함께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생활하면서 본인의 주변에 있는 이성들은 전부 사귀려고 했던 사람이다. 한몇 주 정도는 나와 친했던 언니에게 귀찮을 정도로 집착하고 대시했다. ‘먼 타국에 와서 외로우니 잠깐 만나는 건데 뭐가 문제냐,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떻냐’ 하며 말이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른 이성에게 또 집적거렸다.
재밌는 건 그는 항상 저녁마다 어딘가 불편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항상 같은 시간에 눈치를 보며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알고 보니 한국에 있는 그의 연인의 전화였다. 밤마다 연인에게 달콤한 말로 잘 지내느니, 보고 싶다느니, 빨리 한국 가야겠다는 갖은 거짓말을 한 후 다시 돌아와서는 또 이성에게 수작을 부리기를 반복이었다.
호주에서 살다 보니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그런 일이 있다면 뭇매를 맞을 정도의 비상식적인 행동인데도 외국에서는 비일비재였다. 성별 상관없이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렇다고 일반화를 시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러한 일이 있어도 모두가 잠깐 놀란 후 ‘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였다. 그만큼 흔했고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아닌 그저 외국에서 잠시 지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인간의 끝 , 아니 본성을 볼 수 있는지 황당하고도 끔찍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오히려 내가 호주에서 살았던 5년 동안 그 누구도 믿지 않고 혼자 해쳐나가는 독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 5년 동안 살면서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은 고작 5-6명 정도였다. 깊게 관계를 맺지도 않았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되 그저 내 할 일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너무나도 외로웠고, 인맥으로 인해 남들 쉽게 가는 길, 쉽게 얻는 기회들을 나는 돌고 돌아 몇 배나 힘들게 얻었다. 하지만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인생에 훌륭한 교훈이 되었다.
사람이 착하고 남을 잘 믿는 건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외국 생활에서는 그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정말 그렇다. 유학이나 워킹 홀리데이를 생각한다면 이 말을 꼭 명심하면 좋겠다.
사진출처 : 네이버 '싱글라이더'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