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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Apr 23. 2021

Ep.17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뭐라 하는 시어머니보다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하지만 나였다면 그 둘 다 꼴 보기 싫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에게 새로운 하우스 메이트 그 둘은, 절대 다신 보고 싶지 않은 최악의 인간군상이었다. 그중 제일 악질인 놈은 항상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싫은 티를 드러내며 나를 괴롭혔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데 일이 구해지겠냐?’ 


‘네가 진짜 간절히 원해서 왔으면... 오빠들한테 애교 부리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 부탁해도 시원찮은 판에 넌 뭘 믿고 그러고 있냐?’  


‘야. 가서 이것 좀 사와라. 저것도 사 오고. 아, 빨리빨리 움직여라.’ 


이런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한국인의 정, 단체 문화라는 핑계로 나에게는 프라이버시 따위도 없었다. 독방을 쓰는 내 방에 조심스레 들어온 적도 없었으며 별 시답잖은 본인들 일에 나를 끌어들이기 일쑤였다. 본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같이 해달라며 오만 인상을 쓴 채 부탁한다. 하지만 내가 최적의 대답을 안 했거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했을 땐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로 짜증을 부렸다. 나는 매일매일 그들에게 흔히 요새 말로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 '넌 안돼, 여자가 왜 그래, 센스 좀 챙겨라' 등등 한 인간의 자존감을 깎아내릴 수 있는 모든 말은 그 집에 살며 다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억울하다. 그때에 나는 이제 갓 22살이었고 사회생활 경험도 별로 없던 막 해외에 나온 순진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저 나의 존재와 조건이 그들의 방식에 맞지 않다며 나를 괄시하고 무시했다. 내가 무지하고 못난 거라며 나를 탓하며 깎아내렸다. 열이 받고 화가 났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런 말을 들으며 자존감은 무너졌으나 분노감과 복수심에 이를 갈았다는 것이다.


‘너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여기서 보고 한국 가면 안 볼 사이라 무시한다 이거지? 누가 더 잘났는지 두고 보자, 진짜.’ 


지금이야 이런 복수심은 무서울 수 있으나, 그 당시 억누를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에게는 이런 생각이 조금이나마 힘든 텃세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 같았다. 






그렇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던 중이었다. 자포자기 상태였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날도 이력서를 들고 털레털레 공장엘 갔다. 늘 봐서 이제는 친근한 오피스 직원에게 이력서를 내고 돌아서려는 찰나, 한 남자가 나오더니 나를 불러 세웠다. 그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아주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에게 혹시 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들뜬 마음에 곧바로 어떤 파트냐고 물었다. 그는 ‘Kill Floor’라고 했다. 이름 그대로 동물 도축을 하는 파트였다. 그는 내가 원했던 파트가 아닌 다른 파트의 슈퍼바이저였던 것이다. 순간 뇌 회로가 정지되고 '?!' 이 사인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나는 '오케이!' 했다. '그래. 뭐가 됐든 하자. 일 구한 거만 해도 감지덕지잖아!'라며 기뻐했다. 집에 돌아온 후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그래도) 예의상 이야기하니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것도 잠시 나의 이야기는 곧 웃음거리가 되었다. 


‘야. 여자가 그 파트를 간다고? 거기 남자들도 힘들어하던데?’ 


‘한국인 중에, 그것도 여자가 거기서 일하는 건 네가 최초다! 진짜.’ 


‘ㅋㅋㅋ야 버티겠냐? 한 번 해봐라~ 네가 하도 귀찮아서 맥이는 거 아니냐?ㅋㅋ’     



내가 여자라고, 아시안 사람이라고 못할 건 또 뭐야? 내가 아무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 악질들이 짜증 났고, 여자라서 더욱 무시하는 듯한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엔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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