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분당에서 수행 PM을 맡아 진행하던 H사프로젝트가 점점 힘들어지고 미궁으로 빠지자, 절친 같던 동료는 쉽게 남이 되었다. 근처에서 혼자 사는 그에게 많은 날들을 법카로 저녁 사 먹여 퇴근시키는 등 (비록 대가를 바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공을 들였는데 정작 힘들어지자 그 힘듦을 1/N로 나누는 게 아니라 벽을 쳐 버렸다.
어느 날 식사 후에,자살한 개발자가 발생한 분당 네이버 옆을 그와 함께 걸을 땐 '죽긴 왜 죽나. 도와달라 하지 않고!'라고 힘주어 말하던 그였다. 그런데 막상 팀과 내가 정신없을 때에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필수 사항만 처리하고 유튜브를 보는 등 내가 '도와달라 내미는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힘겨울 때에는
손을 내밀라고 말한다
벅찰 때에는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죽고 싶을 때에는
말을 하지 왜 죽느냐고 말한다
씨팔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손을 내밀면
도움을 청하면
말을 하면
저마다의 이유로
각자 나름의 사정으로
외면할 거면서
모른 채 할 거면서
씨팔
말이나 말던지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2021.08.21
프로젝트 오픈날에 그가 했어야 할 어찌 보면 사소한 일(등록된 결과의 중복방지처리)을 하지 않아 고객의 항의를 받게 되었다.
"그거(중복방지) 하기로 했어요?"
하며 다가오는 그를 보자 극한으로 몰려왔던 스트레스와 내 안에 쌓였던 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나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아... 씨팔"
하고 내뱉어버렸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고, 그날 퇴근하지 않은 채 새벽 세시에 수정본을 서버에 반영했다.
'할 수 있는 거면서...@'
그 후 그에게 서너 차례 사과를 거듭하며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는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와의 앙금은 영영 해소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향해 떠나갔다. 그와 두어 개 프로젝트를 더 수행한 회사는 '실력은 있으나 까칠한 성격인 그'를 다시 뽑지 않겠다고 내게 알려왔다.(해고니 이런 개념은 아니고.. 아시는 분은 다 알겠지만. ^^ 다른 소속으로 일을 구해 잘해 갈 것이다)
살면서 도움 줄 것도 아니면서 세상사에 이러쿵저러쿵 개똥철학을 내뱉는 경우를 몇 번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막상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급박한 상황에서는 외면이라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전해질 약간의 손해, 자신에게 전가될 약간의 책임을 나눠지길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 나눠지지 않으면 누군가는 큰 짐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를 모를 리 없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