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의 차이
벤처 기업에서의 첫 프로젝트
적성에는 맞았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컴퓨터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던 나는 후배들(정확히는 후배와 그 동료들)이 차려놓은 '벤처기업'에 합류하게 된다. 결혼한 후인데 높은 급여는 아니었지만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보수가 없을 수 있는 '모험'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야말로 '벤처(모험)' 기업에 합류한 셈이었다.
요즘은 첨단 기술 분야의 작은 기업을 'StartUp'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세기말이나 2천 년대 초반에는 주로 'Venture기업'이라고 불렀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지만 쉽게 소자본과 첨단기술로 창업하여 성공 신화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도전하던 '모험정신'을 따라 'Venture(모험)'을 붙였던 듯하다. 지금은 우리 언어의 많은 용어가 그러하듯... 미국 등지에서 사용한다는 'StartUp'으로 바뀌었다. 간혹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은 그 차이가 있다고 설파하는 이를 만나곤 하는데... 필자로선 '그게 그거' 아닌가? 싶다^^.
1990년대 이후 'WWW(World Wide Web)'라는, 그 이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인터넷 개념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부산 광안리에서 WWW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백악관 사이트(그때는 접속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백악관이나 중앙일보가 일찍 Web Site를 구축해 둔 상태)에 접속 걸어놓고 30분 기다리다가 연결을 끊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백악관에 접속할 이유(?)가 전혀 없다 ^^.
내가 참여한 벤처기업은 바로 상업용 웹사이트(당시 홈페이지라고도 많이 불렀다)를 구축해 주는 기업이었다. 벤처 기업이었기에 자본이 넉넉지 않은 고객의 요구를 받아 적은 비용으로 사이트를 구축해 주고, 웹 호스팅(Hosting, Web에서 개인 혹은 기업의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도록 서버에 올려 24시간 가동해 주는 서비스)을 주 수입원으로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 주 수입원은... (나를 뺀) 벤처 4인방 후배들(개발 2명, 디자인 1명, 서버관리 1명) 중 모대학 수의대를 다니던 친구가 재미 삼아 만든 'OO CGI쇼핑몰'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것을 소규모 업체에 판매해 얻는 수익이 상당 부분(훗날 분쟁의 씨앗이 된)이었던 것 같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스웨덴의 리누스 머시기가 재미 삼아 뚝딱 만든 게 'Linux'라는 운영체제가 되었다는 둥, 미국의 누가 누가 재미로 만든 컴퓨터용 언어가 거시기라는 둥... 뚝딱뚝딱 만들었다는 것들이 꽤 있다. 실제 재미 삼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티브 잡스가 어느 창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다니 하는 사례로 볼 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OO몰'의 원작자 'Y'는 내게 첫 과제를 주었다. 어느 여행사의 사이트(홈페이지)를 구축해 주는 과제였다. Y는 당시 많이 사용되던 'Perl(펄)'이라는 언어로 사이트를 구축했었는데, 'C'라는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나는 펄 개발자에 비해서 만만치 않는 노력을 들여야만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었다. 호미로 살살살 잡초를 뽑고 북돋기를 해야 하는 일에, 삽을 들고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하는 것... 에 비유할 수 있겠다. 혹은 좀 거칠게 표현하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들고 설친 격일 수도 있고. (C언어는 주로 시스템 제어를 하는 영역에 많이 사용되는 나름 어려운 언어였다. 물론 훗날 국문과 학생들도 C언어 책을 끼고 다닐 정도로 프로그래밍 교육의 과잉 현상이 일기도 했다. 쓸데없이 ㅠ)
학원 강의를 하면서 나름 게으르지 않게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C언어로 '비디오 램 제어(예전 DOS 환경에서 모니터에 이런저런 기호들을 이런저런 규칙에 의해 뿌려대는 행위)'를 해 보기도 하고, 'Visual Basic(MS사에서 개발한 윈도우즈 환경의 프로그래밍 언어)'으로 윈도우즈에 기본 탑재되어 있던 '메모장'을 똑같이 만들어 보기도 했다. 별것 아니게 보이는 메모장도 똑같이 만들려면 그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7,80년대 오락실에서 유행했던 '탁구(혹은 테니스) 게임'을 DOS(명령어 방식 운영체제) 환경에서 구현하고는 '우와~ 내가 게임 만들었다!' 하며 셀프 감탄하고 동생에게 보여줬더니... '에게..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하여간 나름 공부와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비용(돈)'이 주어지는 환경의 프로젝트와 심심풀이로 연습 삼아했던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가 있었던 듯하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를 절감하게 되는 그런 시간들... (어릴 때 바둑 아마 9단이 프로 초단에게 진다는 얘기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는데... 프로라는 것은 역시... ^^)
'웹사이트(홈페이지)'라는 것이 디자인 요소(그림 혹은 움직이는 이미지인 플래시)와 게시판의 결합이었고, 게시판 구축 능력은 웹사이트 구축에서 사실상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글쓰기'가 가능해야 하고, 작성한 글이 '목록' 형태로 사용자에게 보여야 하며, 목록 중 하나를 누르면 그 내용을 보여주고, 수정 혹은 삭제가 가능할 것... 이것이 게시판의 주요 요소 - CRUD(Create Read Update Delete) - 였다. 별것 아니게 느껴지지만 목록으로 뿌려질 때의 고 난이도를 요구하는 페이징 처리(1,2,3 페이지 처리와 페이지가 많아지면 10개씩만 보여주고 다음으로 넘어간다거나, 13페이지 보다가 Back버튼 눌렀으면 13페이지가 포함된 페이지 그룹을 보여줘야 한다거나 등)와 글 작성 후에 작성글이 포함된 갱신된 목록으로 넘어와야 한다거나 등등등 여러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초기에 구축해 줬던 어느 사이트 관리자 페이지에 수정요청이 있어서 접속했더니,,, 사용자 목록 하단에 1페이지부터 1백 몇 페이지까지 표시가 돼 있는 것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최초에는 페이지가 몇 개 표시 안되니, 페이지 그룹화 시켜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ㅠ)
세월이 흐르면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OO 만큼 할 수 있다'라는 개그맨 아저씨의 책을 시작으로 나름 전문 영역인 '홈페이지 혹은 게시판 구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손만 '까딱'하면 완성이 되는 시대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수작업 시대였던 당시에 나는 여행사 사이트 구축을 위해 끙끙거리며 고전해야 했다. 이때 위에 언급된 Y(OO몰 원작자)가 '형님, 이거 제가 하면 1주일이면 끝나는데 첫 시작용으로 드린 거예요' 하며 막힌 곳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다. 우여곡절을 지나 허접하지만 나의 첫 상업 프로젝트인 'O투어'라는 여행사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그에 대한 대가로 내게 삼십 여만원의 보수가 주어졌다. 강사시절 어느 정도 급여를 받다가 삼십여 만 원은 급여라 하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내 직업에서의 질적변화를 가져다준 벤처기업의 참여와 겨우겨우 끝낸 프로젝트에 돈까지 받았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다름이었다. 당시 자신들보다 나이가 위였고 특별히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를 참여시켜 주고, 급여도 챙겨준 후배들에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늘 감사하고 있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