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동장군'이나 '뚝 떨어진 기온'의 날씨 뉴스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추운 날씨야 겨울이 되었으니 다당연한 것이겠으나, IT(정보기술: Information Technology) 분야의 '한파'는 작년 말 이후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수많은 자영업자 등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IT업계는 다른 상황을 맞았었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에 머무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각종 기술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IT 개발자 모시기가 경쟁처럼 이어졌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등이 시장의 IT 인력을 대거 빨아들이다 보니 그 외 분야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키보드만 칠 줄 알면 뽑아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더니 IT분야의 호황도 영원히 이어지지 못했다. 코로나 시절 잘 나가던 '반도체' 업황이 침체하면서, 삼성이나 하이닉스 등이 품고 있던 많은IT 개발자들이 방출되고 공공 프로젝트도 대거 축소되면서 많은 개발자들이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내년에도 IT 뿐만 아니라 전체 경기가 좋지 않을 듯 하니 지금 시기에는 어디선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승자'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최근 우리 팀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팀장과 함께 면접을 진행하였다. 첫 대상자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마흔을 갓 넘긴 남성 지원자였다. 이력서를 살펴보며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곤 하는데...
"하이닉스에서 6년을 했는데, 이젠 더 이어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일 구하기 어렵겠구나' 하던 차에 이 프로젝트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기술력도 갖춘 듯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언변도 좋았고, 열심히 함께 하려는 자세도 갖춘 듯하여 마음속으로 '합격'이라 생각하던 차에 옆에 앉은 팀장이
"함께 해 주시죠. 혹시 다른 곳에 동시 지원한 곳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팀장은 바로 앉은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하였다. 대개는 면접 후에 논의를 거쳐 통보하는데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일자리가 많을 때는 여러 곳에 면접을 진행하고, 조건이 좋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라 팀장이 그렇게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지금은 어지간해서는 골라서 가기에는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다음 날.
여성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며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보통 이력서에는 '이름', '생년월일(과거에는 주민번호)', '주소' 등 기본 인적사항과 학력, 근무경력, 기술경력 등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여성 지원자의 경우는 기본 인적 사항에 '이름'만 적혀 있고 '생년월일', '주소' 등은 적혀 있지 않았다. 연령대는 학교 졸업 연도로 유추할 수 있었지만, 출근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해 볼 수 있는 '주소'가 없어서 면접 시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 면접 예정 시간에 올 수 있는지 확인 전화를 오전에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사전에 전화를 할 것이라고 소개 업체를 통해 전달을 한 상태였다). 한 시간 후 전화가 걸려왔다.
"네. OO프로젝트의 아무개입니다"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Callback 드린 건데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전화를 하겠다고 내 번호가 전달된 상태인 점과 'Callback'이라는 용어 사용까지... 못 알아듣진 않지만 써보지도 상대로부터 들어보지도 않은 용어였다. 소위 나와 내 주변 통화인들은 무식(?)하거나 면접 지원자가 유식(?)하거나... '뭐지?' 하는 싸한 느낌이었지만 면접시간에 뵙자는 대화로 끝을 냈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면접 지원자는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했다. 본인이 '길치'라 그렇다며 사정을 얘기했다. 팀장과 나는 로비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면접을 시작했다.
- 90년 2월 OO여고 졸업
- 대구의 OO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 OOO 프로젝트 수행
- XXX 프로젝트 수행
- 2006년 '서강'대 대학원 정보통신학과 석사
- OXO 프로젝트 수행
전공자에다가 학부 졸업 한참 후 대학원 석사까지!
그것도 출신 학부에 비해 학력차가 존재할 텐데 '서강'대 대학원을.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비걸 분을 위해: 서강 뿐 아니라 'SKY'도 널리긴 했다^^)
팀장은 몇몇 이력에 대한 질문을 하다가
"이 정도 경력이시면 기술적 질문을 드리는 게 크게 의미가 있진 않을 듯합니다. 잘하실 것 같네요"
"네. 저는 Assembly로 시작해서 Cobol, C 거쳤고요, 다수 프로젝트에서 Junior 들 데리고 Coding Coach 해가며 leading 했습니다. 물론 Senior 하고도 일했고요"
'음... 뭐지? 이거' (내 생각)
"대학원은 직장 생활하시면서 마치셨나 봅니다. 기간이"
"아.. 네. 연세대 대학원 갈 것을 괜히 서강대 대학원 가서 고생만 했어요. 연세대도 합격했는데, 서강대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요. 대학원을 학부처럼 시키더라고요."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대답이지?'(내 생각)
"아... 네. 고생하셨네요. 제가 서강고등학교 출신이라 여쭤봤어요"
팀장은 같은 '서강인'이라 반가웠는지 (비록 학부와 석사과정으로 다르지만) '서강고'라는 표현을 지원자에게 건넸는데, 상대는 그 용어를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반응이 없었다.
시종일관 마스크를 쓴 채로 답변을 이어간 지원자에게 팀장은
"죄송한데 마스크 좀 잠시 벗어 주시겠습니까?"
"코로나 시기인데 마스크를 꼭 벗어야 하나요? 꼭 얼굴을 보셔야겠다면 마스크 벗겠습니다"
지원자는 팀장의 요청에 마지못해 마스크의 한쪽 귀걸이를 벗겼다가 다시 마스크를 썼다.
팀장은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실례가 아니라면 가족관계(*주 1)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은 이력서에 성별, 생일, 사진 등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데 대답해야 하나요?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지막 답변이 돌아왔다.
면접을 마치고 팀장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면접 도중 바로 '불합격'을 생각했지만, 팀장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셨어요?"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네요. 저런 자세로는 함께 협업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음... 좀 고민해 봅시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당연히 '불합격'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팀장은 함께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맞는 코드도 중요하겠지만, 해결사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뽑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과제 중 여러 기술적인 난제들 해결에는 기술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한데, 팀장의 눈에 '석사'까지 한 지원자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대답은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팀장이 내 의견과 달리 한 점에 기분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하는 과정 중에 시건방진 팀원과 부딪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미리 상해왔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의 해결은 의외의 상황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다음 날 소개 업체에서 면접 본 지원자가 '야근 시 야근 수당(*주 2)을 달라'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은 무조건 나인 투 식스(9-6) 하겠다'라고.
이 말을 전해 들은 팀장은 바로 "노(No)" 하고 외쳤다.
(전날 밤 퇴근길에 팀장은 내게 '잘 뽑은 거겠죠?' 하며 고민스러운 듯 말을 건네고 헤어졌었다)
시건방진 팀원과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 무거웠던 내 마음은 다시 가벼워졌다. 일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을 뽑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ㅠ
(*주 1)
면접 후 확인해 보니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면접 시
채용절차법 제4조의 3(출신지역 등 개인정보 요구 금지) 조항에 의해
개인의 '신체조건', '출신지역', '혼인여부' 등을 질문하면 과태료 500만 원에 해당된다
고 되어있긴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30인 이상이 안 되는 프로젝트이다).
이혼 등 여러 가지 개인사정이있을 수 있어서 가족관계 질문이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수긍은 되었다. 업계 현실에서는 '수틀리면' 혹은 '힘들면' 때려치우는 '미혼자' 보다는 '기혼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이 어린아이를키우는 부모라면 '야근이 쉽지 않음'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미혼자는 안 뽑거나 나이 어린아이의 부모 지원자를 뽑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차후 면접 시에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된다.
(*주 2)
야근하면 당연히 야근수당을 줘야 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업계 특성과 여러 상황을 고려가 필요한데...
1. SW 개발일은 다른 분야의 일처럼 '시간당 작업량'을 정확히 산정하기가 어렵다.
개발자의 고급/중급/초급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맡은 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게임업체처럼 출시 시기를 맞추기 위해 무조건 월화수목금금금의 야근문화라면 야근 수당이 맞겠다. 하지만, 요즘 대개의 프로젝트는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일의 진척이 늦어지면 적절히 야근을 하기도 한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어떤 경우 잘못 찍힌 점(.) 하나를 찾기 위해 3일이 걸릴 수도, 물론 금방 찾을 수도 있다.
2. 정확히 비교는 어렵지만 SW 업계 보수가 결코 낮지 않게 책정된 측면이 있다.
계속 늘어나는 IT 인력 수요에 보수는 계속 높아져왔다. (물론 아무리 보수가 높아져도 더 높은 보수를 원하기는 한다) 높은 보수에는 업계에 만연했던 '야근문화'에 대한 것도 반영된 것인데, 야근 수당을 정확히 산정하려고 하면... 아마 낮은 기본급과 야근 수당체계로 바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