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이 외로울 땐 손가락을 걸어봐요
오빠와 선배, 그리고 남편
우리는 1997년 3월 어느 날 대학 선후배로 만났다.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얼마나 교집합이 적은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 엄마를 거쳐 내게 전달된 '촉'은 바로 '이 남자가 내가 찾던 남자'라고 말했다. 나는 인문학을 전공했고 그는 기계공학도였다. 겨울과 봄이 몸을 맞대고 있던 3월 초, 목도리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늘 조용히 머무르는 쪽을 택하던 그에게 자꾸 나의 시선이 흘러갔다.
적당한 사각턱에 구릿빛 피부, 짙고 깊은 쌍꺼풀에 갈색이 은은히 도는 눈동자는 세상보다는 자기 내면을 향해 있었다. 팔이 유난히 길었고 손가락은 피아니스트의 그것들 같았고 키가 187센티미터였다. 게다가 덤이 있었다. 그는 아름답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일 줄 알았다. 나는 중고등학교 내내 고시 공부와 공무원 되기를 강요한 아버지를 뒀다. "니 까짓 게"를 자식 사랑의 언어로 구사하는 가여운 아버지였다. 그런 말이 내가 더 공부하고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하는 아버지는 세 살 때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다고 했다. 긍정적이고 다사로운 나의 엄마는 내 아버지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맞춰진 평형수같은 존재였을까.
나에게는 "네가 우리 집 보물이란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외할아버지가 계셨다. "우리 보물 단지"라며 안고 업고 놀아주던 외가 가족들이 있었다.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 다정한 아버지까지도 있었다면 더 좋았겠으나 내 아버지는 다정옵션보유자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좋은 남자'란 내 존재에 온전히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최고였다. 그가 다른 사람의 말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소통하는 사람이란 사실은 직지심체요절과 훈민정음해례본을 합친 것만큼이나 대단한 장점이었다.
이십 대를 세 덩어리로 나눠본다면 첫 번째 구간에서 우리는 연인으로서 지내지 않았다. 선후배였으며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해주는 사이였고, 군대 가기 전 한숨을 내쉬는 사람 곁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 두 번째 구간에 접어들어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여전히 선후배였으며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 하나는 그와 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나중에 남편에게 온갖 구박을 받았다. 영문을 모르던 그 착하고 어린 남자 후배는 나중에야 "누나아아아아아아!" 라며 나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이십 대가 끝나갈 무렵 결혼을 했다. 학교에 있는 야외 결혼식장에서였다. 그의 혈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중간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럼에도 결국 결혼을 했다. 그는 우리 아버지와 달리 전구를 잘 갈았고, 무거운 짐을 묵묵히 들어줬고, 책을 읽었다. '서방'과 '사위'라는 새로운 호칭에 넉살 좋게 달려가 나의 엄마에게 다정한 말과 여러 어려움을 해결해 줬다. 엄마는 "이것 좀 봐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듬직한 남자가 내 딸의 반려가 되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셨다.
어느 일요일 낮에 바람이 불었다. 살랑이는 레이스 커튼 뒤로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응시했다. 내 시선이 고임을 느낀 그도 나를 바라봤다. 내가 웃는 바로 그 순간 함께 웃는 얼굴. 자기 곁의 의자를 가볍게 두드려 나를 초대한 그의 곁에 앉아 일요일 오후를 바라봤다. 우리의 공통 모국어는 '바라봄'이었다.
그를 만나 나는 한 사람의 반려라는 출발선에서 '아내'와 '며느리'라는 정체성을 더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혼 후 시댁과 나 사이에 새로운 균형 잡기와 소통을 익히느라 몸살을 심히 앓기도 했다. 가끔 그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힘들기도 했다. 그 이외에는 그의 조용한 속눈썹은 여전히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우주의 용사가 되어 에이리언들과 격전을 벌이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내 존재의 방식대로 책을 고르고 넘기고 읽었다. 나는 김영하와 니체, 박지원에 대해 말하고 그는 공구 상자와 여러 이공학 언어로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각자의 평행선을 걸었다.
열 일곱 해 사이 우리에게는 두 아이가 찾아왔고 '아빠', '엄마'라는 이름을 더하며 계속 우리는 살아왔다. 오빠이자 선배였던 남편은 내 주변에서 가장 나에게 귀 기울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이해해 보려 애쓰는 동료 인간이다. 요즘 내 주변에도 평행선을 달리는 존재와 헤어질 결심을 아프게 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어떤 결정이든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이라 믿는다. 사랑은 우리가 걸을 길이 같은지 다른지 계산하지 않고 찾아왔던 법이니. 다만 기도해 본다. 부디 다음 사랑에서 평행선을 걷는다 느낄 때 작은 손가락 하나를 시작으로 서로 잡은 두 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