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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05. 2024

엄마, 콘돔이 뭐야?

3대의 성교육은 계속 된다

몇 해 전, 어느 안온한 저녁 식사 시간에 딸이 물었다.


"엄마, 콘돔이 뭐야?"


올 것이 왔구나. 내 이럴 줄 알고 오늘을 기다렸어.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그간 갈고닦아온 매뉴얼을 빠르게 머리속에 떠올렸다. 당황하지 말 것, 아이의 눈을 피하거나 혼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나는 배운 여자다, 나는 준비된 엄마다, 찰나의 순간 마인드셋을 마치고 미소 가득 드넓은 오픈 마인드 패치 장착 후 아이를 바라봤다.


"어머, 우리 딸이 콘돔이 궁금했구나아~!"


우선 아이가 어디서 이 단어를 들었는지 알아야 한다. 흑화 된 세계의 어두운 정보를 통한 건 아닌지, 그저 지나가는 호기심인지 출처를 알아야 아이 주변을 알고 향후 대비가 가능하다 배웠지! 아이는 성교육 만화책에서 봤다며 해맑게 오물오물 밥을 먹으며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딸 : 으응, 그렇구나, 근데 엄마, 왜 그렇게 변신해야 해?

나 : 아기씨가 나오다가 여기저기 부딪히면 다치고 아플 수 있잖아. 너처럼 예쁜 아기가 되어야 하는 소중한 씨앗이니까 안 다쳐야지.

딸 : 그럼 그냥 손으로 주면 안 돼? 아니면 날아가든가.  왜 그렇게 가?


점점 삐질삐질 땀이 났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나는 담담하지도, 분명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게 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라고 소리 지르지 않은 게 어디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나를 다독이다가 문득 기억 풍선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때였다. 낮은 목소리의 수군거림이 꽃받침처럼 모여든 아이들 머리 위로 넘어 들었다. 그건 우리에게 금지된 빨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주위를 살피더니 작은 책을 품에 안고 내게 걸어왔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비밀리에 금서를 읽는  수도사 마냥 다가온 친구는 내게 물었다.

 

"야, 반장, 너 이 말 알아? 너 책 많이 읽잖아."


 뭔데. 흘깃 보니 '콘돔'이었다. 어, 이 단어 나 아는 거, 아니 아는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어어, 이거, 아!!


"이거 식구들이랑 어디 놀러 가서 빌리는 집이잖아."


그 순간 친구는 세상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믿었던 암호해독의 문지기에게 배신당한 듯 친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그날 저녁,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콘돔이 뭐야?"


엄마가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엄마는 저녁 식사 후 엄청나게 두꺼운 가정 대백과 사전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아주 침착하게 까마수트라를 능가하는 가정 대백과 사전의 각종 이미지와 정보를 자상히 설명해 주셨다.


다음 날, 신이 나서 학교로 달려간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외쳤다.


"얘들아! 그거 집 아니야!"


그렇게 대를 앞서가는 선진적 오픈 마인드로 성교육을 해주시던 엄마를 돌부처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때는 1996년. 고3 수험생이 된 딸의 문화생활과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나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가셨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노래방=정학, 청불 영화 관람=역시 정학이라는 초고강수 정통 입시 중심 여자 고등학교였다. 그렇다고 오늘날 특목고나 자사고 같은 개념은 아니었으나 내가 살던 시에 딱 2개밖에 없는 인문계 여고여서 그랬던 듯하다. 학교의 조선 시대 규율을 모르지 않으실 나의 모범 어머니께서 깜짝 선물로 준비하신 영화는 이토록 친밀한 명배우, 한석규 주연의 <은행나무 침대>였다.

1996년 개봉한 은행나무 침대. 나는 고3이었다. 오른쪽 사진 보면 분명 청불, 보이는데 말이지. (사진 출처: 구글, 알라딘)


한석규가 누구던가.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핑크빛 환상을 안겨주던 <우리들의 천국>에 장동건, 이병헌 등과 출연했고, 외가에서 저녁상을 놓고 온 가족이 탄식하며 보던 <아들과 딸>에 나온 탤런트님 아니신가.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한석규는 <서울의 달>에서 최민식 배우님과 오묘한 삼각관계의 주인공 촌놈 제비가 되어 "저 빤들빤들한 놈이 전에 그 괜찮던 사람 맞나"라는 할아버지의 비난과 탄식 속에 명배우다운 면모를 보였다.  


시간이 흘러 고2라는 드라마 및 TV 시청금지 신분으로 전락한 나는 한동안 드라마, 영화 등과 한동안 조우하지 못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농구에 미쳐 학교에서 친구들과 쉬는 시간, 청소 시간, 점심시간마다 교실 TV를 틀어놓고 (문) 경은 오빠, (우) 지원 오빠, (서) 장훈 오빠, (이) 상민 오빠 등을 목에 피맛이 날 때까지 부르다 담임 선생님 날벼락을 때려 맞는 건전한 문제아였다. 엄마가 몰랐을 뿐이지.


그렇게 한 해를 쉬고 영화관에서 만난 한석규는 <은행나무 침대>에서 천년 전과 현재를 오가는 놀라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맡은 역은 정혼자가 있는 공주와 사랑에 빠진 궁중 악사 종문이었다. 그러나 자그마치 장군인 정혼자가 그 꼴을 참고 있을 리 없는 터, 바로 목이 날아가고 천년 뒤 환생한 것이다. 각설하고 결국 엄마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건전 로맨스 판타지로 이모들의 추천을 받아 나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 왔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사달은 영화가 시작하고, 곧 났다. 제작사와 배급사가 아마 먼저 나타났을 것이고 요즘 영화와는 다르게 출연진 정보가 다소 길게 지나갔을 확률이 높다. 기억은 안 나지만. 문제는 그다음. 26년이 지난 사십 줄 중반의 아줌마 머리에도 선명하게 베드신이 시작된 거다. 두 사람이 정사를 벌이는 침대는 침대 다리 높이가 달라 흔들흔들 저울추처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남녀의 신음 소리와 점점 빨라지는 상승하강 리듬은 1990년대 말을 살아가는 모녀가 같이 앉아 보고 듣기에 그다지 편안한 상황은 아니었다. 깔딱깔딱 들썩거리는 침대 다리를 잡아 뜯고 싶었을 만큼 불안했을 우리 엄마. 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굳어버린 우리 엄마의 무언의 동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엄마, 걱정 마. 나 교실에서 애들하고 읽을 만큼 다 읽었어





그날 우리 엄마는 내 무언의 위로와 다독임을 들었을까. 그 후 기억나는 것들은 신현준 아저씨가 눈사람이 된 장면, 한석규 배우님은 사극 분장은 영 안 어울리는데, 와 같은 시답잖은 내용이었다. (이후 한석규 배우님은 역사물에서 임금님으로서 포스를 뽐내셨다. 한석규 임금님이 출연하는 사극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영화가 끝난 후 다시 밝은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바라본 엄마의 뒷모습에서 후회와 불안, 자책이 묻어 나왔다.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뭔가 내게 저 상황(베드신)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려 했던 듯 하나 기억이 안 난다.


세월이 흘러 나는 엄마가 되고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콘돔이 뭐냐고 저녁 먹으며 묻던 나는, 콘돔이 뭐냐고 저녁 먹으며 묻는 딸을 낳았다. 가정 대백과를 들고 와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며 이야기해 주시던 엄마를 닮은 나는, 태블릿을 들고 와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야"라며 이야기해 주는 엄마가 되었다. , 이 랑스러운 모계 혈통이여. 


어른이 되어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 우리가 이어가는 질문은 계속 이어지겠지. 때론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 모를 질문들을 마주하고 대답하며 우리들은 살아갈 거다. 내가 너의 질문에서 어린 날의 나와 젊은 엄마를 만나듯, 너의 삶에도 추억을 선물하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함께 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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