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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26. 2024

엄마, 우리 집이 지저분해서 다행이에요

열세 살 아들이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들이 나에게 말한다. 우리 집이 지저분해서 다행이라고. 아이를 바라보니, 요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내 책장을 가리킨다. 아, 저 포스트잇 때문이구나.




얼마 전 인별그램을 새로 시작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온라인 공간을 운영하는 일은 필수라고 한다. 곧 출간 작가라는 정체성을 더할 터이니 나만의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보자 싶었다. 사실 브런치도 어떤 관점에서는 글을 중심에 둔 SNS일지도 모른다. 해보지는 않았어도 들은 바는 많은지라 인별그램은 텍스트보다 이미지로 소통하는 공간, '있어빌러티'가 중요한 세상이라고 했다. 막막하다. 아는 바가 없으니 책에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 도서관에 가서 '인스타'를 검색하니 온도차가 첨예한 제목들이 한 번에 나타난다.


하루 2700번 이상의 스크린 터치, 3시간 이상의 사용으로 뇌의 몰입과 집중을 무너뜨리는 인스타의 폐해에 대해 다룬 <인스타 브레인>이 먼저 였다. 스크롤을 내려본다. 인스타+돈많은 언니, 건물주, 마켓 성장, 마케팅 등 수없는 돈 벌기 로드맵을 성공 사례와 함께 제안하는 책들이 그 뒤를 잇는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책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일단 전자는 앞서 읽었던 <도둑맞은 집중력>, <불안세대>, <도파미네이션>과 결이 닮았으니 후자를 먼저 보기로 한다.


책을 읽으니 이미 내가 유명 인스타그램 계정 주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러나 쉽게 되는 일은 없다. 책에서는 인스타에서 잘 되는 길이 더 쉬우며 망하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희망은 사람을 일으킨다. 부풀려진 욕망은 사람을 서서히 질식시킨다. 성공 사례는 등대처럼 길잡이가 되기도 하지만, 초점이 엇나간 욕망이 자리잡아버리면 내 마음의 전용공간에 돈, 성공, 좋아요가 들어차고 나는 발 딛을 곳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저 공간 안에서는 고통을 겪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까. 나는 할 수 있다, 자기 확언과 긍정 마인드로 뛰어드는 숱한 이들이 출렁이고 있을 듯 하다. 트렌드코리아에 인용된 성공채널은 누구나 꿈꿔볼 수는 있어도 아무나의 현실은 아닐테니 말이다.


나는 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자 하는가. 우선 하는 게 좋다고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나를 알리고 소통하기 위한 채널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그 점에 동의한다. 나는 나를 왜 알리고 소통하고 싶어할까. 내가 쓴 글을 다른 분들이 읽고 응답할 때 기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인정 욕구는 사람에게 필수적이다. 나는 나의 글과 생각을 담고 싶었다. 누군가는 왜 일기를 여기에 썼느냐고 할테고, 어느 마음 착하고 차마 뾰족한 말을 못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든 내 글에서 좋은 점 하나를 찾아주려 애쓰실 테다. 매일의 선택이 모여 루틴을 이룬다. 순간의 소통이 쌓여 투명하고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가지 않을까. 그러면 '나'의 색채가 살아있는 '우리' 라는 무지개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목적'을 정한다.그 목적을 추구하는 적절한 방법이 '콘셉트'가 된다. 나는 하루 한 장씩 내가 읽은 책들의 구절을 적어 게시하기로 했다. 나는 내 글씨체가 마음에 든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필사, 좋은 글귀'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여러 피드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안구정화가 되는 듯 아름다운 피드들이 많다. 참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이로세.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알아서 기쁘다. 다음날, 새벽 5시, 나는 즐겁게 나의 첫 게시물을 준비해 올렸다.


내가 일찍 일어나는 건 미라클 모닝이나 이런 구호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 시간이 온전히 집중하기에 가장 좋을 뿐이다. 새벽의 2시간은 잘 깎은 연필심처럼 마음을 모아내기 좋다. 나의 밀도가 농밀해지는 시간이다. 7시가 되면 울려퍼지는 KBS 클래식 FM을 배경음악 삼아 아이들의 등교준비로 태세 전환하기에도 자연스럽다. 대신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해내야 할 일이 많아져 부담스러울수록 나를 잘 돌봐주고 싶다. 주변을 보면 자기 자신을 땔감 삼아 미친 듯 계속 태우기만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 역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살아야만 했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고 몰랐다.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모두가 말했다. 이제는 아니다. '열정'의 불길에 내가 그을리지 않도록 온도를 낮추고 잔잔히 오래오래 타오르고 싶다.


내 소중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보통의 하루가 귀하디 귀하다. 아주 보통의 하루들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일상의 어느 순간을 프레임에 맞춰 공유하고 인정받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지 않을 예정이다. 그런 삶은 입시 로드에서 눈 가리고 달리던 말처럼 달렸던 시간, 졸업이 가까웠을 때 취업스펙을 위해 뭐라도 해내야 했던 시절에서 그만두어도 좋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돈이 많은지, 가진 게 많은지 물어보신다. 아니다. 나 역시 두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 대출과 여러 상황을 균형 잡기 위해 안간힘 쓰는 보통의 사람이다. 다만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마냥 담보 잡히는 일을 줄이기로 선택했을 뿐. 내 삶의 평형수를 지키고 맞추고 싶다.



하루에 한 구절씩 글쓰기와 관련된 구절들을 포스트잇에 필사하여 올리고 있다. 책을 읽고 구절을 고르는 일은 즐겁다. 그 글을 읽고 나 자신, 누군가 오늘의 쓰기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기에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쓴다. 그렇게 쓴 포스트잇들은 버리거나 책장 옆에 붙여두기도 한다. 아이가 나에게 한 말은 그중 하나에 적힌 말이었다.

 당신의 집이 깨끗하다면 그건 당신이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낸시 슬로님 애로니의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에 나온 구절이었다. 그 문장이 적힌 종이를 보고 아이는 "엄마, 우리 집이 조금 지저분해서 다행이에요."라며 나의 글쓰기를 인정해 준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 표정은 무척 순진하고 밝아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그때 박혜란 선생님이 떠올랐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기도 한 선생님께서는 늦은 나이에 아들 셋을 키우며 다시 공부를 시작하셨기에 몹시도 고단하고 바쁘셨다. 어느 날 아들이 우리 집도 계절마다 커튼도 바꾸고 집안 배치도 바꾸자, 집에 먼지가 너무 많다 등등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먼지에게 시간을 줘. 그럼 알아서 뭉쳐질 거야.
그때 손으로 살짝 집어서 치우면 된단다.  

삶은 참 묘하다. 오늘 나는 나의 글쓰기를 '약간' 지저분한 집과 열세 살 아들의 인정 속에 발견한다. 엄마가 해야 할 책무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불편한 목소리가 스물스물 올라온다. 그 일이 최우선은 아니야, 이 정도면 아주 좋아, 라고 말하는 또다른 목소리도 분명히 들린다. 앞으로 이런 회색 지대에 종종 서게 되리라는 짜릿한 예감이 온 몸을 감쌌다.


웃으며 두 팔 벌리자 아이가 품에 와락 안긴다. 아들을 안고 등을 쓰다듬어 본다. 내 어깨에 아이의 턱이 얹힌다. 이제 내년이면 우리 집에서 가장 키 작은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너희가 너희의 몸과 마음을 키워나가는 동안, 나도 성장해 나갈게. '약간' 지저분한 집이 조금 더 지저분해져도, 엄마가 그만큼 열심히 글을 쓰고 계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가족들과 살아서 고맙고 행복하구나. 이제 너희 몫은 차츰차츰 너희에게 부탁할게. 엄마도 자라야 하거든. '나 자신'이 살아있는 '우리'의 삶을 쓰는 사람으로 계속 자랄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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