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감상후기
오늘 나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마무리했다. 넓게 펼쳐진 보리밭을 걷는 애순과 관식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극이 끝났다. (마지막 장면은 보리밭인지 유채꽃밭인지 내 눈물의 폭포수에 가려 헷갈리긴 했다.) 에피소드가 끝나고 촬영팀이나 배우들이 잔뜩 모여서 이제까지 드라마를 감상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없이 폭삭 속았다며 고생했다며 끝나버린 이야기가 나는 못내 아쉬웠다.
"좋은 때를 떠올리는 장면 아냐?" 띄엄띄엄 내용만 알고 있던 남편은 나를 보며 도대체 이 장면에서 왜 우냐는 듯 물었다. 사실 저녁을 먹으러 가서도 '관식이가 아프대 벚꽃같이 사는 사람이래'라는 이야기를 하려 했다만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다. 되직한 돈코츠 라멘은 불어 터져 갔다. 남편이 시킨 스모 라멘 그릇은 내 그릇의 두 배 정도였고 남편은 그 많은 양을 먹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스모 라멘이 뭔 특별한 라면인 줄 알았더니 그냥 곱빼기 라면이었다. 일본에 유학 갔던 금명이가 생각났다. 중증이다.
이번 드라마를 재밌게 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애순이와 금명이를 연기한 가수이자 배우 아이유 덕분일 것이다. 같은 해에 태어나서 자라 가는 아이유 님을 보고 그 예쁜 말들로 채워진 노래들을 듣는 게 참 좋았다. 시카고 콘서트에 왔을 때 아이유는 콘서트장이 위치한 지역이름이 로즈몬트 (Rosemont)인 것에 꽤나 감명이 깊었는지 콘서트 중에도 몇 번이나 여기가 이름이 로즈몬트여서 장미꽃 달려있는 옷을 입었다거나 지명이 마음에 든다거나 하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앵콜곡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옆에 있던 남편은 미아..! 미아..! 라며 이야기했지만 제일 싼 좌석에 앉아있는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아무튼 그때 나는 남편님도 아이유 노래 좀 들으셨군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 애순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며칠 전 보았던 영화 박하사탕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재기 발랄하고 앙큼한 애순이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전후를 다룬 박하사탕의 앳된 모습과 시간이 좀 더 흘러 금명이의 입학식에 온 그 모습이 겹쳐 보였다. 딸의 성공이 금메달인건 왠지 아쉽고, 애순이가 겪어온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눈물 난다. 하지만 애순의 하루하루는 소녀 같은 마음과 따뜻한 가족이 있어 기쁨으로 가득 찼을 것 같다.
최근에 본 어떤 글에서 왜 금명이는 운동하지 않는가?라는 글을 보았다.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를 그리는 이야기에는 많은 역사적 아픔들과 사건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극 초반부에서 많은 해녀들이 나오지만 그대들의 남편들 이야기는 없고 서로 의지해서 사는 모습들은 제주 4.3 사건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또한 드러나지 않은 금명이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금명이가 응답하라의 보라를 만났을지 아닐지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알아낼 수 없다. 금명이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다른 드라마가 나오지 않는 이상..
오랜만에 만난 따뜻하고 즐거운 가족의 이야기가 너무 반가웠다. 유채꽃밭을 가로지르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볼 때는 소설 동백꽃 필 무렵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아이 셋을 낳아 기르다 동명이를 잃었을 때는 나도 같이 울었다. 또 짧고 흐드러지게 피는 벚나무를 볼 때면 관식이를 떠올릴 것 같다.
* 사실 제목은 어그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