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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GONGWON Oct 29. 2020

가벼울 땐 가볍고, 무거울 땐 무거운.

친구 G는 왜 나를 만날까.

"형하고는 관심사가 같아서 친해진 것 같은데요."


왜 날 만나는 지에 대한 친구 G의 첫 답이었다. G는 나보다 3살 어린 친구다. 나는 동생도 친구라고 지칭하는 편이다. 후배라는 말은 낯간지럽고,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도 편안한 관계가 되고 싶어 그렇게 지칭한다. G는 나에게 경어를 사용하지만, 스스럼없이 대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렇지. 관심사가 같았지. 카메라나 기계 같은."

"맞아요. 그때 관심사가 같아서 이렇게 친해진 것 같은데요."


G와 나는 사진,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영상 관련 대외활동을 통해 만났다. 프로젝트를 하며 많은 시간을 나누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주말에 따로 만나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G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식사도 하였다.


G는 대학교에서 영상 분야를 전공하였고, 현재 한 기업에서 영상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G의 취미생활이자 관심분야가 전공을 거쳐 밥벌이가 된 것이다. 힘들지만 재밌단다.


나도 영상을 좋아하지만, 취미에 머문 정도다. 일로 이어지는 것에 용기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까지 발생할 반작용을 거스르는 것이 두려웠다. 어찌됐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내가 해야할 일을 해야 하니까. 그 반작용을 거슬러 좋아하는 일을 하는 G가 때론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그때 형이 알려준 그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커피에도 눈 뜬 것 같아요."

"맞아. 그 카페 좋았는데."


G와 나는 만나면 식사하고 나면 주로 커피를 마셨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내가 술을 즐겨하지 않고, 잘 마시지도 못한 이유가 컸다. 그래서인지 으레 나를 만나는 사람들과 대부분 술보다 커피나 차를 마셨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런 나를 알고 억지로 술을 하지 않았다. 속으론 어땠을 진 모르겠지만.


그래서일까, 평소와 조금 다른 만남을 가졌다. 내가 먼저 위스키 한 잔 하자고 G에게 제안했다. 마침 식사하던 곳 근방에 커피와 술을 겹하는 카페가 새로 생겼다. 갓 이직한 G에게 이 곳 맛집도 알려줄 겸 그곳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보는 이름들 사이에서 나는 어렵게 하이볼을 골랐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G에게 물었다.


"근데 하이볼이 뭐야?"

 

이 곳에서 커피만 마셔봤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하이볼이 뭔 지도 모르고 주문하는 일자무식이 드러났다.


"근데 관심사가 갖다고 이렇게 친해지진 않았을텐데. 그렇잖아. 사실 주변에 관심사가 가지며 친하다고 해도 이렇게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까."


나는 하이볼을 홀짝거렸다. 입과 코 사이로 묵직한 알코올 향이 넘어왔다. 병원에 온 느낌이었다.


"음. 그래도 형은 뭔가 대화할 때 가벼울 땐 가볍고, 무거울 때 무거운 그 느낌이 좋았어요."

"가벼울 땐 가볍고, 무거울 땐 무거운?"

"네. 그 완급조절을 하며 대화를 이어가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가벼울 땐 가볍고, 무거울 땐 무거운. 지금껏 생각지 못한 이야기었다. 내가 그렇게 무게를 조절하면서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나.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는 대화할 때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무거운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그게 오히려 단점처럼 여겨 요즘은 그렇게 대화하는 것을 줄였다. 재밌는 이야기 잘 이어가다 갑자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상대방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뜬금없이 무거운 이야기 던지는 거 민폐 아냐?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이야기 던지는 게 부담됐을 수 있을텐데."

"그게 오히려 형의 신중한 면모 같아요. 사람을 가늠하는 형의 기준 같은 거랄까요."

  

G는 위스키 잔에 손을 댄 채 담담히 말했다. 나는 G의 눈을 봤다. 카페는 테이블 위의 촛불과 간접조명에 기대고 있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G의 눈빛은 명료했다. 내가 평소 보았던 그 눈빛은 오늘따라 더욱 또렷이 보였다. 진심어린 시선이었다. 나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하이볼을 홀짝였다. 새로운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나로 비춰보며 G와 만났을 때를 생각해본다. 어리숙했던 그때는, 지나치게 솔직할 정도로 나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사람과 친밀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일 수 있다.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때처럼, 나의 모습을 알려줄 때가 있다. G처럼 좋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여줘도 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믿기에.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한 느낌이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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