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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A MI Sep 12. 2022

모든 그림은 추억의 임시거처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매일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에는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백에 그날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분이나, 그날 읽었던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그날 먹었던 음식의 영수증이나, 그날 받았던 택배 상자나 지니고 있던 물건의 스티커 등 그날을 '증명'할만한 것들을 남겨둔다. 그러면 그날 하루는 더 풍부해진다. 눈으로 본 것만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인연이 이어질지 모르는데 
그렇게 다 놓아버리면 어떡해


노트의 첫 그림에는 그날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분을 적어 두었다. 

사실 근 몇 년 동안 새로운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직장을 옮기면서 빠르게 적응했지만 마음을 열지는 못했고,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폐쇄되고 있었다. 늘 '친구가 없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그에 대한 큰 아쉬움은 없었다.

"언제 어떻게 인연이 이어질지 모르는데 그렇게 다 놓아버리면 어떡해"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 말을 따라 적었다. 

"글쎄.. 어떻게든 되겠지 뭐"

라며 대답을 흐렸고, 그 뒤로도 대화는 이어졌지만 귀담아듣지 않은 모양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귀담아듣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았다. 


그 뒤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어느 날,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새벽에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출근하고요, 출근 후에는 매일 그림을 한 장씩 그리고 있고요. 가끔 도서 제공받아서 서평 같은 거 쓰는 게 취미예요." 

"아.. 다 혼자 하는 거네요?"

알고 있던 일인데도 타인으로부터 듣게 되면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렇죠 뭐"

라고 또 대답을 흘려보낸다.

"클럽이나 동호회 같은 활동도 해봐요"

라는 조언을 들으며 그 뒤로도 대화는 이어졌지만 역시나 귀담아듣지 않은 모양이다. 

띵하고 머리를 맞는 기분이 들었고 울적해지기까지 했던 말이었지만 바뀔 생각은 없어 보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많은 시간을 보낸 홀로 보낸 너의 담담함을 짐작하겠다 

여느 날처럼 그림을 그리는데 페이지에 '(늪의) 내간체를 얻다'는 시 제목을 보곤 시의 내용이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내간(內簡)은 안사람(부녀자)이 쓴 편지라는 뜻으로 늪의 풍경을 보자기에 싸서 보낸 여동생에게 언니가 보내는 편지글이었는데 '그 많은 고요의 눈 맵시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라는 한 줄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화법으로, 누군가가 내 스케치북을 본다면 '그 많은 시간을 보낸 홀로 보낸 너의 담담함을 짐작하겠다'라고 말할 것 같았다. 35권의 스케치북을 채우면서 한때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을 홀로 카페에 앉아 채워왔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잠시 쉬어가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려오곤 했는데, 그 속에 늘 그려져 있는 한잔의 커피잔을 보면 누군가 그렇게 말을 건넬 것만 같기도 했다.

담담한가, 나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익숙하고 편안한가, 나는 



모든 그림은 추억의 임시거처이다

다음날, 오은 시인의 강의와 함께 시집을 읽었다. 시간을 체화시키는 일은 결국 '時間을 들여 詩間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모든 시집은 단어들의 임시거처라는 시구가 생각나는 말이었다. 

어떤 느낌들이 있다.
문밖으로 나가는 누군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살면서 그 사람과 한차례는 더 마주칠 것 같다는 느낌.
기다리고 품고 헤어지고 또 한 시절을 헤매다가 처음인양 다시 스칠 것이다. 
모든 시집은 단어들의 임시거처다.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中 

내 모든 그림은 홀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결국 마주한 누군가들과 함께 한 시간도 가치 머무는 추억의 임시거처이다. 물론 누군가와의 만남 없이 오롯이 혼자 하루를 정리는 시간으로 그린 날이 가장 많긴 하지만, '홀로 있음(solitariness)'과 '외로움(loneliness)'은 다르기에 그림을 홀로 있는 시간에 그렸다고 해서 그것이 고독이나 외로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하루에는 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고 앉아서 그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기다리면서 그린적도 있었고, 약속 후에 남아서 그 시간을 곱씹으며 그린 적도 있었다. 기다림도 있고 헤어짐도 있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인연이 이어질지 모르는데 그렇게 다 놓아버리면 어떡해"

노트의 첫 페이지에 적어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흘러가는 시간의 한 부분을 잡아 그림으로 담아두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 것과 어쩐지 '애를 쓴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마음을 쓰고 노력*하는 수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지속되려면 애써야 한다.*** 


모든 그림은 추억의 임시거처이다. 하루하루의 추억과 기록이라지만, 사람을 그리지 않는 장면을 그리는 그림이라지만, 조금 더 사람 냄새가 나는 추억이 담겨 있길 바란다. 



* 노력한다 :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쓰다. 

** 수고한다 : 일을 하느냐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다.

*** 애쓰다 :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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