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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칠리 Jun 30. 2022

04 | 3개월 차. 상사에게 일을 뺏어왔다.

골칫덩이 신입의 반란

저, 퇴사해요.


나는 모두가 말하는 '3개월'을 기적처럼 믿었다. 그렇게라도 버텨보려고 했다. 그러던 중, 동료가 퇴사를 선언했다. 퇴근 대신 퇴사를 하고 싶다 말한 그분이었다. 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자기 전에 책임님 목소리가 들려요. 꿈에서도 일하고 있고...


그분도 나와 비슷한 병을 얻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매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밤에 환청이 들린다느니, 꿈에서도 일하고 있다느니 하는 얘기
를 떠들었다. 끝에는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며 같이 한숨도 쉬었다. 그러면 한 번씩 디자인팀 동기분들이 함께 욕도 해주고, 녹음하라는 팁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소연할 동료라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우리 팀에서 나와 같은 신입이었던 분이 퇴사한다니. 나는 전장에서 전우를 잃은 기분이었다.



잘 선택하셨어요. 더 좋은 곳 가셔야죠.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ㅠㅠ


나는 그분의 결정을 응원했다. 사실 부러운 마음이 99.9%였다. 나도 함께 퇴사하고 싶었다. 그분이 나가면 이제는 오로지 나 홀로 책임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다. 그분께는 미안하지만 나는 혼자 그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분이 이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마음고생했을지, 나는 가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에 동료를 붙잡지 않았다.


애초에 그분은 작은 실수만 내던 사람이었다. 예컨대 이미지를 잘못 올리거나 오탈자 같은, 인간미 있는 실수 말이다. 그러니 그분은 그저 신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임의 갑질 겸 군기 잡기에 희생당한 것이었다. 그분은 이곳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맞았다.



칠리님은 퇴사 안 하세요?


동료는 내게 퇴사하지 않느냐 물었다. 내가 그때 어떻게 대답했더라. 앞으로는 전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 뭐라고 얘기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해야죠, 하고는 싶은데...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동료는 퇴사 준비를, 나는 버티기 싸움을 시작했다.



뭐든지 하기 전에 나한테 물어보고 해. 사고 치지 말고.


동료가 퇴사 면담을 한 후. 책임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더 이상 심한 욕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행동하라고 했다. 상품을 등록해도 되는지, 이미지 작업을 해도 되는지, 이런 건 고객사에 문의해도 될지 등등. 내가 하는 모든 업무에 그의 허락이 떨어져야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나는 큰 사고를 친 후 고객사 대리에 의해 담당자 자리에서 제명당했다. 비록 2억 로스 사건은 책임도 함께한 작업이었지만, 나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뚫어 심해 어딘가까지 내려갔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에게 물어보고 행동하면 결과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도 그의 것이 된다. 그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이니, 나의 잘못은 적어진다. '책임'이라는 안전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책임이 내려주는 일을 처리했다. 책임은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단계적으로 던져주었다. 물론 늘 생색을 냈다. 비속어만 안 썼지, 자존감 깎는 말은 여전히 바가지로 했다. 그래도 이미 버텨보기로 한 이상 내가 참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악바리로 살았다.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건 자존심이 상했고, 낮아진 자존감으로 우울에 잡아먹히는 건 더욱 싫었다. 그래서 당시 나에게 직장 생활은 곧 서바이벌 그 자체였다.



나 때는 맨날 새벽 3시까지 야근했어. 퇴근 후에도 파일 가져가서 공부하고. 주말에도 연구하고.


책임은 내가 야근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처음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매일 이야기하니 그놈에 라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그가 말한 걸 따라 했다.


회사에는 매일 저녁 11시까지 남았고, 일이 없을 땐 작업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집에서도 다음날 업무를 미리 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정리했다. 주말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은 워라벨을 챙기느라 바쁘던데. 워라벨은 무슨. 나는 워크(Work)가 곧 라이프(Life)인 삶을 살았다.



너는 집에 와서도 일하니? 뭔 그런 회사가 다 있어.


어느 날은, 내가 집에서까지 업무를 붙잡고 있으니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버티라던 엄마의 눈에 보기에도 도가 지나치다 싶었나 보다. 심지어 우리 회사는 야근 수당도 나오지도 않으니 이게 무슨 착취인가 싶었겠다. 하지만 이것이 나만의 '버티기 방법'이었다.



내일 업무 몇 개 미리 해둬야 편해. 회사에서 야근하는 것보단 낫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엄마를 돌려보냈다. 방문을 닫고 노트북으로 상세페이지 기획서를 쓰는데 순간 코끝이 찡해져 왔다. 왜인진 모르겠는데 엄마와 이야기하고 나니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한다고 나아지는 게 있을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지. 억울함과 비참함 같은 감정이 뒤섞였다.


더 싫었던 건, 그럼에도 일을 놓지 못하는 나의 오기였다. 당시의 나는 업무에 있어 완벽주의가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짓밟히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병조차 이용했다.


환청과 불면이 찾아오면 그 시간에 일을 했다. 새벽 3~4시가 되면 기절하듯 얕은 잠을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회사에 갔다. 회사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내가 했다. 미친 짓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땐, 차라리 나를 혹사시켜야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칠리... 자사몰 등록 오류 0건 굿.


21년도 1월 말쯤. 그러니까, 내가 3개월 차를 다 채워가던 그날. 수석님께서 보낸 채팅에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오류 0건. 매일 실수를 연발하던 내가 한 달 동안 오류를 내지 않았다니!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그때 이미 자사몰 업무는 내가 전부 돌려받은 상태였다. 책임과 함께 일했던 제휴몰은 오류가 몇 건 있었지만, 나 홀로 관리했던 자사몰에선 오류가 없었다. 미친 소리 같지만 나는 정말 짜릿했다. 전율이 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휴 오류 건이 있어서... 앞으로 더 주의 깊게 보겠습니다...ㅠ


나는 이미 내적 댄스를 추고 있었지만, 답장은 최대한 차분하게 보냈다. 눈물 이모티콘도 하나 덧붙였다. 이럴 땐 최대한 쭈굴쭈굴 쭈구리처럼 보여야 한다. 한 곳에서 오류가 하나도 안 났다고 신나 하는 건 내 입장이고. 회사 입장에서는 계속 오류가 나고 있는 것이니 아직 좋아하기엔 일렀다.



그래. 책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지.


수석님은 응원인 듯 한숨인 듯 모호한 답장을 보냈다. 아마 수석님의 성격상 답답한 감정과 함께 그래도 얘가 성장은 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나는 수석님께 더 분발하겠다고 답했다. 이미 한 달 만에 오류를 0건으로 만들어 봤다. 성공의 경험은 죽어가고 있던 내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나의 오류 0건 소식은 책임에게도 꽤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전부터 내 실수가 줄자 책임은 은근슬쩍 제휴몰 업무도 나에게 넘기고 있었다. 최종 검토를 그가 했을 뿐이지, 실무 자체는 내가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채팅은 책임이 치고, 일은 전부 내가 하는 묘한 장면이 연출됐더랬다. 이런 와중에 오류를 0건으로 만들다니! 책임은 이제 본인이 실무를 하지 않아도 됨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나는 한 달 만에 책임에게서 모든 일을 뺏어왔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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