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6~7점/10점인 요즘 그리고 억압된 마음
매일 통증을 기록하는 나에게, 요 며칠은 지난 1년 중 최고 점수를 갱신한 나날들이었다. 10점 만점에 6~7점. 그 이유는 나의 치료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달 전 새로운 도시로 이사 와서, 서울로 다니던 J 대학병원이 아닌 새로운 도시의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고 2달 만에 초진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J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았던 의사 선생님의 분야인 '정신신체의학'분야 교수님이 이 대학병원에도 계셔서 진료의뢰서를 챙겨 내원했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했고, 나의 상태와 여러 병원에 다닌 기록들에 대하여서도 꼼꼼히 물어보셨다. 여러 이야기 끝에, 선생님은 자기 전에 먹는 약과 아침, 저녁으로 먹는 안정제를 제외한 모든 약을 빼 보는 것을 제안하셨다. 지금 먹고 있던 신경병증적 치료제들은 통증에 도움이 되는 약이 아니며, 통증에는 진통제를 먹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시중 약국에서 구하기 쉬운 약들을 1~2알씩 먹어도 되고,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항우울제가 통증에 있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빼 보자고 하셨다. 통증은 어려운 분야라고 운을 떼며, 지금으로서는 일단 약 기운이 빠지는데 5주 정도가 소요되니, 그때까지 한번 약을 안 먹어보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통증을 잡는데 여러 가지 방법을 총 동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틀 후부터 나는 엄청 아파지기 시작했다. 약을 엄청 줄인 여파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턱이 너무도 알알했고, 광대가 아팠다. 이렇게 5주를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이번주를 넘겨보려고 한다. 오랜 기간 먹었던 약들이기에 약이 갑자기 줄어든 여파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사 후 진통제를 챙겨 먹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 현재 나는 통증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때로는 울기도 하고, 잠으로 도피하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할 때, 이렇게 물으셨다.
"신체화 장애 3년이라고 딱 명시하신 이유가 있으신 걸까요? 3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나는 허공을 보며 대답했다.
"신체화 장애는 3년 전에 갑자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인신고를 하셨어요. 그 상대는…."
듣고 나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정말 신체'화(化)'되었네요."
또 다른 질문이었다.
"어머니에게 나르시시즘이 있다고 작성하셨는데, 이것도 면담치료에서 알게 된 것인가요?"
"아, 면담 치료면 상담 말씀하시는 거죠? 네." 하고 대답했다.
의사는 말했다.
"지금까지 어머님과 관련된 내용을 담담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그 이면의 내용은 전혀 감정동요가 없을만한 내용이 아니에요" 의사는 말을 이어갔다.
"억압. 억압이라고 하죠. 마음속에 억압된 것이 많으신 분들에게 신체화 증상이 많이 발생하곤 해요. 쉽게 말해 힘들면 힘들다고 잘 말하지 못하시는 분들이에요."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잘 말하는 편이다. 억압과 관련해서 이해하기 쉽게 예시로 들어주신 것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 이후 임상심리 상담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깨달았다. 내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억압의 에너지를.
내가 수시로 느끼는 죄책감의 밑에는 엄마에 대한 공포가 있다.
나르시시즘을 지니고 있던 엄마에 대한 공포, 엄마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나를 혼낼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가 잘하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싫어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나의 존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깊은 곳에는 여전히 엄마에 대한 공포가 살아 있고, 비록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2년이 넘어가더라도 엄마가 나를 향해 쐈던 적대감은 여전히 나에게는 살아있던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엄마에 대한 공포를 죄책감으로 덮었다. 생존방식이었다. 엄마 본인 자체의 문제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에 대한 공포를 덮기 위한 방식이 죄책감이었다. 만일 내가 '잘못했다면' 엄마가 나를 혼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 존재 자체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잘하지 못해서 엄마가 이러는 걸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어린 나는 무의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다.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소위 '절연'하고 지낸 최근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나에게 깊이 새겨져 있는 엄마에 대한 공포다.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며, 내 안의 긴장, 각성, 아픔은 여전히 살아있다.
정오에 겨우 눈을 떠, 통증으로 인해 약을 먹고 다시 누울 때, 나는 마치 2-3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에 좌절스러웠다. 2-3년간 통증을 없애고자 온갖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받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런 기분을 느낄 수는 있고, 그런 생각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아니다. 나는 여러 방식으로 통증을 치료해보고자 했고, 지금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통증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2년 전, 나는 엄마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지금 나는 엄마를 알고, 이렇게 글로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엄마의 나르시시즘적 인격장애와 그에 대한 나의 자동화된 생존방식이 이제는 머리로 이해가 되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나선형으로 좋아지고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전진하다가도, 뒤로 후퇴하는 것 같고, 또 한 걸음 나아가다가도 뒷걸음질치곤 한다. 이번 주, 나는 통증에 완전 KO 당했다. 정말 호되게 맞고야 말았다. 그래도 나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괜찮다. 조금씩 다시 일상을 회복하면 된다. 다시 한 걸음 내딛으면 된다. 다시 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