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온이 May 28. 2024

'난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네'

Don't be fooled you're loved


만일 당신이 제목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요새 많이 아프다. 치료 방향을 바꾸면서 약이 많이 줄어들었다. 통증의 강도가 10점 만점에 6점 정도인 나날들이다. 어느 날, 통증 때문에 겨우 오후 1시에 일어나 폰을 봤다. 아는 언니가 사업을 탄탄하게 일구어왔는데, 기부를 했다는 게시글을 올렸고, 그 글을 보자마자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를 누르자마자 그다음으로 나에게 들었던 생각은 '와,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논리적 비약이 엄청난 생각이었다. 유튜브를 보아도, TV에서 연예인을 보아도,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를 보아도, '아, 저들은 창조적인 걸 만들어내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잠시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생길 때면 나를 탓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바로 나르시시즘을 지닌 엄마로 인해 내게 새겨진 <분노-공포-죄책감>의 고리에서 '죄책감'에 해당하는 생각이다. 아픈 것조차도 내게는 '이겨내지 못한' 일인 것이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는,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것을 성취해 왔다. 아빠의 알코올중독, 엄마의 나르시시즘적 인격장애, 그리고 사이비 교회의 사기로 인한 가난이라는 환경에서 SKY대학을 갔고, 대기업을 다녔고, 다시 대학원을 갔고, 박차고 나와 다른 대기업에 다녔다. 지난 30년을 모범생으로만 살아오면서, 나는 나의 존재를 나의 '결과물'로 증명해 왔다. 이런 나에게는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심리적 아픔'이 실제로 '신체적 아픔'이 되었고, 나는 나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다음과 같은 마음 깊숙한 곳의 '생각'을 직면했다. 나를 이루는 '핵심 신념'이었다.


'잘하지 못하면, 넌 사랑받지 못해'


아프면서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마음 깊숙한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무언가를 해내지 않으면, 넌 아무것도 아닌 거야'


통증만으로도 힘든데,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깊은 생각을 맞닥뜨리니 더욱 괴로웠다.


최근 읽고 있는 '나는 왜 이유 없이 아픈 걸까'라는 책의 저자 기 코르노는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위기는 우리를 진정한 삶, 진실한 자아로 이끌고 간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나 골칫거리가 생긴다는 건 우리 존재의 깊은 부분을 들여다보라는 요구라고 볼 수 있다. 치유과정은 안에서 밖으로, 깊숙한 곳에서 표면적인 곳으로, 영혼에서 육체로 진행된다.



나는 속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야만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사랑받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세상의 '거짓말'에 나는 완전히 속고 있던 것이다.


기 코르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병의 의미는 그 당사자가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을 파헤칠 용기를 가지고 있을 때만 드러날 수 있다.



나는 죄책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잘하면 인정받고, 사랑받을 거야'라는 무의식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늘 경직되어 있고, 근육은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목과 턱이 수축한다. 요새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 종아리, 무릎, 허벅지 전체에 자꾸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이 생각이 나의 삶에 얼마나 깊이, 넓게 스며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오랫동안 내 삶을 잠식해 왔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생각과 각 잡고 싸우지는 않으려 한다. 각 잡고 몇 시간 싸워봤더니 바로 패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패배할쏘냐? 그럴 수는 없다. 대신, 나는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거리를 두고자 한다. 한동안은 이 생각이 나를 뒤흔들려고 나타날 것을 받아들이면서, 긴장을 풀고 이렇게 말해주고자 한다.


'Don't be fooled you're loved. (속지 마, 넌 사랑받는 존재야)'


만약 당신이 제목과 같이 '난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혹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거짓 메시지가 올라온다면, 나처럼 속삭여보지 않겠는가, 'Don't be fooled you're loved'.


이 구절은 Adelyn Paik의 Apricity(태양의 따스함)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당신과 이어폰을 나눠 끼고 같이 듣고 싶다.


Don't be fooled you're loved.



  

작가의 이전글 얼굴이 많이 아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