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화가 끓다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질병은 상실을 불러온다.'
나는 내 통제권을 벗어난 통증에 건강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느낀다. 상실감에서 나아가, 나는 지난 한 주간 좌절감을 느꼈다. 턱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통증과 광대 안쪽, 치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알알함에 완전히 넉다운당했다. 그리고 몸 곳곳이 아팠다. 오른쪽 허리, 반복되는 기침, 왼쪽 다리의 긴장.
그리고 서서히 우울감이 나의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올랐다. 내가 지난 8년간 적은 용량으로 계속 처방받았던 항우울제를 안 먹은 지 2주가 지났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최근 3년간 신체화장애를 겪으며 항우울제를 계속 처방받아왔다. 항우울제가 통증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들의 처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바꾸게 된 대학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항우울제가 통증을 오히려 심해지게 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며 약을 빼보자고 하셨고, 나는 동의했다.
약이 빠진 탓일까, 통증 때문일까.
통증도 버거운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울한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 안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엄마에 대한 분노가 내 몸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마치 팔팔 끓고 있는 주전자에서 김이 하나도 빠지지 않아 터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나는 화가 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화는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나의 신체화증상이 억압된 분노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시발점은 엄마에게 있었다. 내 삶을 앗아간 것만 같은 그녀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 화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로 향했다. 나를 또다시 자책하고 탓하는 것인데, 이게 어찌 보면 내가 선택한 가장 쉬운 방식이며, 나의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불을 뿜어대는 용처럼 화를 내고 싶다.
화가 난다는 나의 말에, 상담시간에 화를 내보았는데 전혀 풀리지가 않았다. 상담선생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화를 내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안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느 정도까지는 낼 수 있는 범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화의 극단값을 보고 자랐다. 나에게 화는 무서운 것이었다. 화의 모습은 아빠가 온 집안을 부시는 것이었다. 엄마의 화는 무척이나 날카로웠으며, 신경질적이어서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것을 보고 자란 나는, 화가 날 때마다 그것을 아주 차갑게, 드라이아이스로 얼리듯이 꽁꽁 얼려버리고 내 마음속 깊이 넣어두곤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놀랍게도, 아빠의 장례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행정처리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에, 엄마가 '그 사람'과 '혼인신고'를 한다는 카톡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화를 내지 못했다. 당장 전화해서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에, 당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나는 마치 논문을 쓰듯이, 논리적으로 1번, 2번, 3번, 4번을 운운하며 엄마가 잘못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화를 꾹꾹 담아 글로 남겨버린 것이다. 엄마에게 소리치지 못했다. 그녀에게 화를 내봤자, 그녀는 나를 돌아버리게만 할 뿐이라고 여겼다.
나는 화를 냈어야 했다. 소리 질렀어야 했다.
그 사건 이후 4개월,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내뱉지 못한 화는 결국 나에게로 향했다.
그 화는 여전히 나를 답답하게 하고 있다.
결국 그 화는, 여러 모습을 띄고 나에게 지금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아온아, 너는 화 낼만 해'
'욕해도 돼, 착할 필요 없어'
'화내도 돼, 화는 자연스러운 거야'
지금도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얼음 좀 삼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