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온의 지난한 6월 건강 기록
몹시 힘든 한 달이었다. 지난 3월까지 약 6개월이 넘게 다닌 신경과를 뒤로 하고, 신경외과를 다니며 도수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효과를 봤고, 기뻤다. 15회 차가 넘어가는 즈음, 조금씩, 나도 임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통증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갖고 싶은 내 마음을 인정하게 되면, 나중에 행여라도 갖지 못하게 될 때 너무 괴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봤을 때, 나는 아이를 낳고,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를 키우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먹는 약은 임신 전 단약이 필요한 약들이다. 온갖 노력을 통해 찾은 약들의 조합이었고,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약을 줄인다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요새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가임력검사를 해봤을 때, 나의 난소 나이는 나의 실제나이보다 4-5살 많게 나왔고, 산부인과 의사는 본인의 나이보다 3-4살 이상 차이가 나면 임신을 늦추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남편과의 긴 대화 끝에, 임신을 위한 단약 과정을 밟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먹는 약을 절반으로 줄이며,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약을 줄이게 되면 통증은 줄어들기보다는 통증에 익숙해지게 될 텐데, 도와줄 수 있는 옵션이 있는 게 좋겠다며 TPI 주사 등을 맞을 수 있는 재활의학과를 권해주셨다. 다니고 있던 신경외과의 도수치료도 18회 차를 넘어가니 효과를 잘 느끼지 못했고,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집에서 무척 가까운 재활의학과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매주 월요일, TPI(통증유발점 주사) 치료를 여러 약물의 변주를 주며 맞았다. 림프마사지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왼쪽 턱, 광대, 관자놀이, 오른쪽 턱, 광대에 주로 맞았고, 약을 맞으면 얼굴이 해바라기씨 만 개는 삼킨 다람쥐처럼 양쪽 턱이 붓곤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두 약을 절반으로 줄이는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르는 재활의학과로의 병원 옮기기, 새로운 치료, 재활의학과에서도 받는 새로운 약물들.
그런데 내 몸은 항복을 선언했다. 점점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통증으로 인한 피곤과 삶의 질 저하가 급격하게 일어났다. 몸이 아프니 점점 마음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몸은 예민해졌고, 맞지 않는 약으로 인해 속이 또 메스꺼워지고, 일상생활이 버거워졌다. 이 와중에 참 좋은 후배라고 여기는 친구가, 미국 아이비리그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전에 잠시 내가 사는 지역에 놀러 와서 시간을 함께했다. 그 친구와 있으면 편안하고, 나는 친구가 멋진 학자가 되기를 바라고, 될 것이라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과 비교가 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학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그의 모습이 그저 내 시선에는 멋지게만 보였다. 늘 성취로 나를 증명해 오던 내가, 프리랜서 일을 하며 가까스로 일과 나의 존재를 자꾸 연결해서 설명해 오던 내가, 폭삭 주저앉아버렸다. 나의 일이 작아 보이고, 내가 작아 보였다. 그렇게 난 비교와 열등감으로 인해 주저앉아버렸고, 나의 약한 지점을 다시 한번 눈치챘다.
그리고 점점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아플까 봐 걱정이 된다. 한 달 뒤에 올 때 너무 아프면, 그때는 남편과 상의해 보시라”는 말이 계속 귓전에서 맴돌았다. 옆에서 나의 지난한 통증, 피곤, 지침, 눈물을 보던 남편은 늘 나에게, ‘아온, 네가 먼저야. 네가 있고 아기가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 아기 없어도, 오히려 좋아하면서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하고 계속 일러주었다.
지금 임신을 안 한다고 해서, 아이를 아예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단약을 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남편 앞에서 울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딱, 하고 알아차렸다. 나 지금 좀 상태가 많이 안 좋구나, 하고.
“나에게는 아이를 갖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조차 허락되지가 않는구나. 나에겐 왜 이렇게 허락되지 않는 게 많지?”
알아차렸다. 내 존재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느낌을 받고 있구나.
지금 내가 무척 약해져 있구나.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게 올라왔구나.
그리고 나는 단약 과정을 밟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있어야 아기가 있다. 내가 먼저고, 내가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삶을 누려야 한다. 지난 한 달, 점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정적으로 치우쳐져만 갔는데, 그 추를 다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을 늘리기로 했다. 대학병원에도 내 의사를 말씀드리고, 재활의학과에서도 일단은 임신은 미루고자 한다고, 할 수 있는 치료를 더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리기로 했다.
처절한 한 달이었다. 정신과에서 처방받는 I 약은 통증을 목적으로 하지만 우울, 불안, 통증에 모두 관여하는 약이다. 약을 줄이게 되어 초반에는 쫓기는 느낌,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시간을 온전히 다 운영하며 책임지는 프리랜서로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후반에는 세상 모든 것이 불공평하게만 보이는 안경을 자꾸 쓰게 되며 우울해지고 말이다.
나는 지난 한 달이 아쉽기도 하고,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내 마음의 한 구석을 조금 비우기로 했다. 그래, 어쩌면 단약은 계속 어려울지도 몰라. 나의 회복을 기다리기로 했다.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계속 토닥여주기로 했다. 지난 한 달간의 경험이 쓰라렸고, 이 시기를 통해 다시 한번 나의 존재에 대한 의심, 박탈의 감각 등을 마주해 괴로웠지만, 그래서 몸과 마음이 안정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나는 회복할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무너져 내렸지만, 나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나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이것은 나의 선언이다.
“나는 내 몸의 회복을 기다릴 수 있어. 아이가 오든, 안 오든, 나를 먼저 지켜야 그 어떤 미래도 맞이할 수 있어”
내가 먼저고, 내가 1순위다. 아온, 고생했어.
(아래 사진은 오늘까지, 내가 매일 작성한 몸 관찰일지다. 아침에 일어나서의 컨디션을 가장 먼저 작성하고, 그 날의 치료, 주사, 약, 운동 등을 작성하고자 했다. 강렬한 감정은, 종종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