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벗기까지

나를 껴안는 글쓰기_4_대기업을 떠난 나, 죄책감 속에서 길을 찾다

by 아온이

질문 : 내가 과거에 한 선택에 관한 글을 써주세요. 그 선택과 관련한 두려움과 설렘 등과 같은 감정들이 있다면 다시 느껴보면서요. 그러기 어렵다면 어려운 대로 자연스럽게 쓰면 됩니다. 그것 또한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니까요.


잘 알지는 못해도 ‘멋져 보이는’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번지르르해 보여서 지원한 것만은 아니다. 3년 내내 나의 꿈은 ‘사회적 기업가’였으니까. 대학생이 된 나는 경영학과 정말 맞지 않았다. 나의 관심은 돈이 되지 않는 것에만 가닿았다. 나의 존재, 마음, 종교, 철학, 문학, 역사와 같은 것들에 말이다. 경영학과를 겨우 졸업한 나는 어쩌다 대기업 재무실에 입사하게 되는데, 그곳은 대학의 공부보다도 나에게 더 맞지 않는 곳이었다. 숫자 보기가 싫었고, 세법에 대해서 보는 것은 더욱 싫었다. 퇴사를 하고 싶었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가족의 지원 없이 홀로 대학생활을 하며 생긴 빚이 있었고, 그 회사에서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기에 퇴사할 때, 받은 장학금을 ‘뱉어내기’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는 차원이 다르게도, 꽤나 괜찮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도 좋았다. 그저 그 일이 나와 맞지 않았다. 오랜 시간, 매일 울며 고민했다. 괴로웠다. 나는 몹시나 두려웠다. 사실, ‘이 회사를 나가면 무엇을 하지? 혹은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보다는, 한국 사회가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전형적인 삶이 앞에 놓여있는데,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사회가 말하는 전형적인 성공의 길, 돈을 안정적으로 버는 길을 이탈한다는 무서움이 나를 압도했다. 나는 그저 ‘그 일’과 맞지 않는 것뿐인데, 그저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인데,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나에게 화살로 돌아왔다. ‘너, 사람들이 다 좋다는 회사 다니고 있는데, 이것조차도 못 버텨?’, ‘아직 신입이라 중요한 업무도 하고 있지 않잖아, 근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 어디서든 적응하는 애잖아, 이럴 리 없는데?’하는 생각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무척 두려웠다. 전형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것만 같은 그 느낌이. 내가 ‘잘못하는 것 같다’하는 모호한 죄책감이.


결국 나는 1년 후 퇴사한다. 퇴직금으로 그 회사의 장학금을 뱉어냈고, 조금 모아둔 돈으로 준비해서 사회복지대학원을 입학한다. 결국 그곳 또한 우여곡절 끝에 졸업하지만, 학자의 길을 가는 것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관련 진로를 걸어가지 않는다. 멋지게 퇴사한 후, 당찬 도전들로 인한 후일담이 남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양한 어려움을 직면하며 ‘얻어터진’ 에피소드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돌고 돌아 지금 나는 프리랜서다. 지금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꽤나 내 스타일을 찾았고, 또 어느 정도 어울린다. 나름 만족스럽다. 나의 20대는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 선택을 내리는 것이 몹시도 어려워서 사소한 선택에도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쓰곤 했다. 마치 그 선택이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만 같아서다. 두려움에 가득 찬 묵직한 아온이는 한껏 주눅 든 채로, 죄책감이라는 핵심 감정을 가슴에 품고, 정말이지 조심스럽게 선택을 하곤 했다.


그랬다. 두려움이 있었고, 그 안의 핵심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전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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