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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Sep 14. 2020

빚 공화국 | 이진우 시인


빚 공화국  | 이진우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늘 모자라다

공과금 내고 할부금 내고 은행 이자 내고나면 

다시 대출받아야 하는

만성적자 가계부를 집어던진 게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에 백기를 든 게 언제부터인가

돌이킬 수 없는 빚은

가족이 되고

피부가 되고 뼈가 되었다


이 시대가 선전하는 행복

그 이상으로 살아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기저기서 앞다투어 자선하듯

돈 빌려줄 땐 몰랐다 

황금빛 미래를 담보로 맡기고 

당당하게 대출받는 줄만 알았다


돈이 넘쳐나는 시대

돈으로 굴러가는 시대에 올라탄 채

쓰고 또 쓰는 즐거움에 미쳐 질주한 나날들이 

목을 조르기 시작한 후로

맘대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모두가 빚

빚더미에서 자고

빚더미를 입고

빚더미를 먹으면서도

겉으론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채 

목숨을 이어가는 일이 

휘황찬란한 미래만 선전하는 

금융자본주의 생존법이 되었으니

누구나 이렇게 빚더미에 얹혀서 

이자의 노예로 살다가

상환능력이 없어지면 자식에게 빚을 상속하고 

이 세상을 떠야 하는 것인가하고 둘러보면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지게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데

행복한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넘쳐나는데

왜 생활은 빚더미에 눌려 앓는 소리만 내는 것이냐

앓는 소리를 내면

왜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웃는 얼굴로 짓밟으려 드는 것이냐



시집 {보통 씨의 특권}, 2015.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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