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당신 몸을 원자보다 작은 단위에서 보게 된 후 로, 당신의 존재와 부재를 의심하게 됐어요. 당신 몸에서 밤하늘 별처럼 흩어져 있는 원자핵만 모으면 당신은 쌀 한 톨만큼 작아져요. 그 나머지 당신은 텅 비어 있죠. 그러니까 당신은 무엇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까운 거지요. 존재보다 부재에 가까운 당신을 이루는 원소를 모아봤자 고작 몇 푼밖에 안 되죠. 당신을 물질로 볼까요, 가치로 볼까요, 의미로 볼까요. 당신을 물질이나 가치로 따지지 않을래요. 내가 당신을 보기 전까지 당신은 스치는 세상의 풍경이었을 뿐이죠. 어쩌면 공기처럼 흩어져 있거나 다른 우주에 있었는지 몰라요. 나도 마찬가지였겠죠. 내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며 시를 쓰고 있는 이유는 당신이 나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요? 지금 여기 내가 보이는 이유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면 정말 좋겠어요.
우리는 텅 비어 있으니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그러니 당신이 여러 모습으로 여러 우주에 흩어져 살아서 나도 여러 형태로 여러 우주에 흩어져 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다른 우주에서 당신은 어머니이고, 아내이고, 딸일지 모르죠. 꽃이고 강아지여도 좋겠고 작은 집이고 낮은 베개여도 좋겠어요, 내가 당신을 보지만 않고 늘 만질 수만 있다면 당신의 모습은 아무래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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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보통 씨의 특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