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밖 기획자 이야기

맛집 신화를 넘어, 시스템을 고민한 시간들

by 비하인드 예린

01.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본사의 역할


프랜차이즈 본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본사’라는 단어에서 권위와 시스템을 떠올렸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우리가 맡은 대부분의 업무는 사후 대응에 가까웠다.


A 점포의 매출이 급락하면 원인을 찾고, B 점주의 불만이 커지면 수습하고, C 협력사가 납품 조건을 바꾸면 그 사이를 조율했다.


문제는 명확했다.

우리는 ‘운영’을 하고 있었지, ‘기획’을 하고 있지 않았다.


본사는 단순히 가맹점을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 본사의 진짜 역할은 표준화된 운영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프랜차이즈는 그 ‘설계’를 생략한 채 가맹 사업을 시작한다. 메뉴는 있지만 매뉴얼은 없고, 프로모션은 있지만 손익 시뮬레이션은 없다.


‘그냥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감으로 일을 밀어붙인 결과는 늘 똑같았다.

점주는 본사를 불신하고, 본사는 점주를 ‘말 안 통하는 사람’으로 본다. 나는 그 사이에서 좌절했고, 때론 점주들에게 사과를 대신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기획이라는 단어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02. 브랜드보다 먼저 설계해야 할 것들


프랜차이즈 창업 설명회를 가보면 대부분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브랜드력으로 단숨에 흑자 전환!”

“SNS에서 뜬 OOO, 이제 가맹 시작!”

“본사의 10년 노하우 전수!”


하지만 내가 본 현실은 다르다.

브랜드보다 중요한 건, 그 브랜드를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브랜드를 사랑하는 고객이 많다고 해서, 그 브랜드의 시스템이 안정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외식 브랜드들이 ‘마케팅’은 잘하지만 ‘운영’에 약하다. 예쁘게 포장된 BI, 유행하는 메뉴 콘셉트, 감각적인 매장 인테리어보다도 먼저 고려해야 할 건 다음 네 가지였다.


1. 누가 주방에 들어서도 똑같은 맛이 나는 레시피

2. 피크 타임에도 혼선 없는 동선 설계

3. 점주가 아닌 알바가 운영할 수 있는 매뉴얼

4. 정기적으로 성과를 점검할 수 있는 기준표


이 네 가지가 빠진 프랜차이즈는 잠깐은 뜰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03. 나의 첫 메뉴 개발 실패기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재직 시절 ‘히트 칠 수 있는 메뉴 하나만 개발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나는 시장조사를 하고, 트렌드를 분석하고, 샘플을 수십 번 맛봤다. 드디어 모두가 ‘괜찮은데?’라고 한 메뉴가 나왔다. 출시도 잘 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매장마다 맛이 제각각이었다.

조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일부 소스는 유통기한이 짧아 폐기율이 높았다.

본사 공급망에서는 그 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지 못했다.


결국 몇 달 만에 해당 메뉴는 ‘단종’되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기획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현 가능한 설계’라는 것.


프랜차이즈에서 기획자는 셰프가 아니라, 조리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맛있는 걸 개발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누구나, 어디서나, 같은 품질로 낼 수 있는 메뉴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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