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
날 것의 감정을 체에 여러 번 걸러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일렁이는 마음을 그대로 내놓으면 과식을 했을 때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그럼에도 그런 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내가 후회나 불안의 덫에 걸려있을 때 주로 그렇다. 있는 대로 모두 내어놓고 나면 조금의 수치심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학원에서는 고3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종종 그 애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부러워지곤 한다. 수북히 쌓인 걱정거리를 피해 기억을 여행한다. 안전하게 뿌리 내리지 못한 마음이 공원을 떠돌다 무력히 집으로 돌아갔던 나날을 떠올린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내게 닿자 이미 닫혀버린 가능성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충분히 몰두할 수 있었을 나를 그려본다. 자신의 미래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엮어 나가는 아이들을 직면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아리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이제 나아간다는 사실 하나를 부러워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한 번 글로 뱉어내고 나면 마음에 파다하던 파문은 잠잠해진다. 글로 무엇을 해보는 것 이전에 글쓰는 것은 내게 일종의 치유라고 할 수 있다. 매일 밤 이어지는 글쓰기는 산란하던 하루를 보듬어 준다. 잠깐 모습을 감춘 덫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피해갈 재주는 없고, 물리고서 빨리 빠져나오는 수밖에는 없다.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강렬한 사랑. 사랑에 대해서는 그토록 많은 글을 썼음에도 다시 목 끝까지 말이 차오른다. 나는 홀로 서기로 몇 번이고 다짐하고도 영원히 내 반쪽을 기다릴 것 같다. 난 정서적인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고 그게 나의 삶의 의미라서 이토록 그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게 누구든.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나이가 적든 상관 없이, 누구든. 그로 인해 숨쉬고 그로 인해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이든 그것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상념이 머리에서 뜬구름처럼 흘러간다. 누구든 꼭 안고 싶은 밤이다. 오늘 꿈에서 누군가를 뒤에서 꽉 껴안았는데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고서도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