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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Jan 20. 2023

숨바꼭질

 커피 한 잔과 맥주 한 캔. 그리 많지 않은 양의 음료 두 잔의 위력은 대단했다. 심장의 속도가 두 곱절은 빨라졌고, 말의 속도도 세 곱절은 급해졌다. 평소라면 사지 않을 가방, 귀걸이, 엽서가 쇼핑백에 잔뜩 담겼다. 급기야는 지하철역 화장실 안에 핸드폰을 놓고 오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꿈속에 있는 것처럼 정신이 둥둥 공기 중에 떠다녔다. 쉴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나를 보고 엄마가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다시 그 시기가 온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카페인과 알코올이 등 떠밀었을 수도 있겠지만, 슬슬 그 시기가 오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간 것은 재작년이었다. 원래 자주 우울해지는 사람이긴 했으나 이때는 무언가 달랐다. 무슨 짓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아침에는 이유 없이 나오는 눈물에 당황하는 일이 잦았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아래로 가라앉기만 기다렸다. 보다 못한 엄마가 병원에 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했다.


 마음의 감기를 치료한다는 정신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비인후과에 가듯 아무렇지 않게 정신과에 가기는 힘들다. 지인에게 아는 병원을 물어보는 것도 힘들다. 몇 없는 인터넷 후기에만 의존해서 병원을 골라야 한다. 집에서 멀지 않고, 후기가 가장 좋은 병원을 골라 처음으로 갔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11월의 어느 날이었고, 꽤나 쌀쌀한 날씨에 나는 긴 부츠를 신었다.


 우울증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 진단명은 양극성 장애였다. 이를 좀 더 친숙한 이름으로 하자면 조울증이다. 그중 내 병은 약한 정도의 조증인 경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울증이다. 처음 병원에 찾아갔을 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우울감이었고, 경조증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약을 먹고 매주 짧게 상담하며 5개월 정도의 치료를 지속했다. 덕분에 우울에서는 빠져나왔고, 나는 내가 괜찮아진 줄 알았다.

 

 평온한 날은 금방 모습을 감춘다. 얼마 있지 않아, 작년 11월에 나는 다시 어딘가 이상해졌다. 그맘때쯤 나는 마음을 줬던 친구와 힘들게 이별하고, 상당히 우울한 기분에 살도 많이 빠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 모르는 남자를 여럿 만나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대뜸 어릴 때 취미였던 촬영을 다시 시작했다. 뭐든 잘 될 것 같은 기분에 새로운 일을 벌이고,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계획을 세웠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이 경조증 증상이었다. 헬륨 풍선이 하늘로 자꾸만 떠오르듯 올라가는 내 기분을 땅에 묶어놓아야 할 때였다. 다시금 약을 먹고, 매주 병원을 찾았다.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반짝이는 이 상태가 나는 오히려 좋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 시기가 다시 돌아오면 고층에서 바닥으로 처박힌 느낌이 들 테니 지금 안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하늘에서 바닥으로 처박혔다. 우울증에는 그 시작을 만든 원인이 있었다. 친구와의 소원해진 관계라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것들. 누구든 우울해질 만한 일이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냐 없냐가 문제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겪었던 우울보다 몇 배는 더 심했다. 이대로는 내 감정에 먹혀 질식하겠구나, 우울을 넘어 공포가 나를 덮쳤다.


 또다시 평온이 숨는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조울증은 완치가 힘들다고 한다.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 기분이 저 하늘에 숨으면 찾아내 아래로 내리고, 기분이 저 아래에 숨으면 위로 끌어낸다. 내 감정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한심해질 때도 있다. 자꾸만 내게서 달아나 숨어버리는 감정이 미워진다.


 그래도 지금은 끔찍한 우울에서 벗어나 평온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매일 먹는 약이 나를 더 이상 가라앉지 않도록 방어막이 되어준다. 상담하는 시간에 혹시나 어디론가 숨어버리진 않았나 의사 선생님과 함께 꼼꼼히 살펴본다. 요즘 무얼 하고 있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글을 써서 공모전에 내볼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멋진 글을 쓰시겠네요. 감정을 폭넓게, 진하게 느끼시니까요.”


 의사 선생님이 하신 이 말이, 의례 하는 칭찬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 숨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 헤매던 모든 순간이, 그 와중에 느낀 모든 감정이 내 글이 된다면. 그렇다면 나는 몇 번이고 이 숨바꼭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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