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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진 Feb 01. 2023

내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남짓이 지났다. 글을 쓰겠다고 한 번 더 휴학하기로 결심했다. 기세 좋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3쪽이었던 소설이 5쪽으로, 10쪽으로 불었다. 그러나 쓰고 싶은 이야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설은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개연성, 필연성, 개성, 문장, 사건, 인물……. 글에 갖춰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내 실력이 늘고 있다는 뚜렷한 지표도 없었다. 짧더라도 쉼 없이 소설을 써왔지만, 성취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어떤 공모전에도 투고하지 않았고, 내 글로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복학을 앞두고 휴학 기간을 되돌아보니 불안해졌다. 작은 공모전에서라도 상을 받았어야 했나 후회도 되었다. 내가 1년을 쉬는 동안 친구들은 졸업하고, 취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나 홀로 이룬 것 없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은근한 불안과 후회가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새로 소설 수업을 등록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막막했다. 5년 후, 10년 후에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어쩌지? 평생 작가가 되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만이 내 글의 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날 무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매주 소설 합평 모임을 한다. 처음 들었던 소설 수업에서 만난 문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이번에 새로운 단편소설을 두 편 완성했는데, 이들이 없었다면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글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애정을 담아 합평하는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이야기하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넘기도 한다. 


 막연한 불안이 찾아와도 합평 모임을 할 때는 행복하기만 했다. 외부 수업에서의 합평에서 내 소설이 물어뜯겨 형편없어 보일 때, 이들은 내 글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알아봐 주었다. 그들은 함께 글 쓰는 문우일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내 소설을 아끼는 독자들이었다.


 저번 합평 모임 또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들과 글을, 마음을 나눌 때면 한 차원 높은 행복에 도달한다. 나와 파장이 맞는 사람들과 공명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이거면 된 것 아닐까? 물론 불특정 다수가 내 글을 읽고, 일면식 없는 사람이 내 글을 알아봐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책을 내서 그렇게 되는 것이 내 꿈이다. 그러나 글 쓰는 행위 자체와 내 주변의 적은 독자들의 감상만으로도 난 충분히 성취감과 행복을 느낀다. 작가가 무엇인가. 글을 쓰는 사람, 독자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이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으면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고, 그로써 나는 한 사람의 작가가 된다.


 글을 쓰고, 읽고, 드러내고, 공명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휴학을 결심하고 내 삶을 무척 아름다워졌다. 내 안에 평생 꺼지지 않을 마음의 불씨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동안의 성과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내 안의 불씨만이 조용히 타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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