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9
글을 써오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밖에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느낀 감정들, 생각의 소용돌이들, 걱정들, 나의 미래, 나의 사랑, 나의 몸과 영혼에 관한 것들로 가득 찬 글만이 남아있다. 출판 프로젝트에서 ‘글이 나에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썼을 때, 나는 언제가 되든 꼭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다. 내 글에 진심으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생각이었는지. 나에게는 나뿐이고, 그토록 갈구했던 타인의 자취는 결국 하나도 남아있질 않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크게 휘청였던 우리 집은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안정을 모르고 살았다. 이제 겨우 손에 쥐었다고 생각할 때쯤 도망가는 안정을 내 친구들은 너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물이 스미는 질투와 질투보다 더 아픈 체념이 잔뜩 물을 먹은 솜처럼 묵직하게 가슴 깊이 파고들던 때도 있었다. 어떻게든 주변과 비슷한 생활에 맞추려 아등바등 대는 내 꼴이 점점 보기 싫어졌고, 분수라는 명목으로 꿈의 영역은 점점 좁아졌다.
한 때는 나의 모든 실패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며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만 더 비참해진다는 것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안 사실이다.
당장 닥쳐오는 불안감보다 더 나를 옥죄는 것은 미래에 걸린 올가미다. 철모르는 아이처럼 꾸던 꿈은 모두 목이 부러졌다. 나는 당장을 대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찬물처럼 끼얹고는 도망가는 모두가 미워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어리석어 보인다.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가능한 꿈도 접어버리는, 꺼낼 것이 자기자신 밖에 없는 빈약한 사람. ‘잘하는’ 일반인으로만 남고 싶어하는 나를 보며 얼마나 그릇이 작은 인간인지 실감하곤 한다.
나는 결국 후회만 남는 선택을 하게 될까. 가난이 대물림 되듯 어리석음도 대물림 되는 것인지. 꿔서는 안 될 꿈도 없으며,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정답들이 모두 나를 비껴 나갈 것을 확신한다. 오늘도 내 글에는 나만이 남았다. 다른 사람을 설 자리를 치워버리는 작가가 이 세상 어디에 있나. 제자리에서 자전하는 질문들이 나를 에워싼다. 나는 그곳에 갇혀 작은 숨을 헐떡인다. 내 세상에는 내가 숨 쉴만큼의 공기밖에 없다. 나에게 들어온 모든 것이 질식하여 스러지는 것을 나는 본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땅에서 자란 나는 누군가 날 붙잡아 주기만을 바랄 뿐, 그 위에 바로 설 생각을 하지는 못한다. 속절없이 넘어지는 이곳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바란다면 그때 받아들이겠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지친 와중에도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 때는 일어서겠지.
나는 남들과 다를 것이라는 자신이 얼마나 우습고 지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은 얼마나 선명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