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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03. 2021

인터뷰|새로운 전공의 시작 D+9

인터뷰 시리즈: 시작하는 사람들 01

인터뷰 시리즈:시작하는 사람들

왓츠뉴는 이름 그대로 새로운 것들에 관한 콘텐츠입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왓츠뉴의 인터뷰 시리즈 <시작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에 첫 발을 내디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시작하는 사람들 #01

새로운 전공의 시작 D+9



소개 부탁드립니다. 무엇을 새로 시작하고 계신가요?

저는 이번 학기 컴퓨터학과 인공지능응용전공에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입학한 정혜지입니다. 대학원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된 지 9일 되었네요. (인터뷰 당일 기준)


컴퓨터학과 전공이시군요.

네. 하지만 학부에서는 국어학을 전공했어요. 

원래도 음운론, 음성학 등 국어학의 분석적인 부분을 좋아했는데요. 대학에 입학한 시기가 마침 '4차 산업혁명의 해'라고 불리던 때였고, 컴퓨터학과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국어학에서 연구한 것을 컴퓨터학과와 접목시키면, 한국어를 잘하는 인공지능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어학과 인공지능이라니, 흥미롭네요.

진로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하다가, 언어학 · 인지심리학 · 컴퓨터공학이 섞여 있는 융합전공을 선택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한국어와 인공지능, 그 사이의 연결점을 찾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죠.

그러다 좋은 기회를 얻어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기획팀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요? 자세히 설명해주실래요?

"헤이 카카오"하면 대답하는 인공지능 스피커 있잖아요. 카카오의 인공지능 기술과 플랫폼을 개발하는 기업이에요. 인턴을 경험했던 기획 파트는 개발된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업무를 수행했는데요. 일 자체도 재미있었고, 사회적인 의미도 크다고 생각했어요. 인공지능 기술은 매일 발전하지만 그 기술이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가치가 너무나 달라지니까요. 기술이 사회를 바꾸려면 기획하는 과정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줘야 했죠. 


카카오 인공지능 스피커


그런데 지금은 기획 업무가 아닌,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길을 선택했네요.

처음 일을 시작하고 보니 인공지능은 정말이지 공부할 게 산더미였어요. 자꾸만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로 취직을 하기에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았어요. 대체 어디까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모르니 답답하기도 했고요. 보다 근본적으로 어떤 기술을 만드는지까지 연구하고 싶었어요. 


일을 하기 위해 수단으로써 대학원에 온 것은 아니에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컸어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요. 지금은 연구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공부하는 내용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요.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하나씩 공부해나가는 쾌감이 있어요.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를 하시는군요. (웃음) 

저한테 원래부터 이과감성이 있었나봐요.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셈인데, 전공을 바꾸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사실 학부 3학년 때 갑자기 컴퓨터학과 수업을 왕창 듣느라 힘들었어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기초-활용 순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는데, 저는 3학년이 되어서야 융합전공으로 컴퓨터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거든요. 베이스가 없는 상태로 난이도가 높은 과목까지 들어야 했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도 과제를 놓아버리거나, 던져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과제에 몇 시간씩 투자하거나,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물론 힘들지만 괜찮았어요. 그런데 저를 가장 괴롭게 했던 건 줄어드는 자신감과 불어나는 두려움이었어요. 자꾸 주눅 들고, 질문도 못하겠고, 뭐라고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스스로가 자꾸 작아지는 과정을 뚫고 지나가는 게 제일 큰 노력이었어요. 교수님을 찾아뵙고, 질문을 하고, 사람들과 스터디도 하고, (관련 공부를 하는) 동아리도 하는 동안 매번 두려움에 대한 도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익숙하지 않은 일에 뛰어드는 건 언제나 두려운 것 같아요.

'내가 잘하고 있다'는 감각이 들지 않는 게 가장 두렵더라고요. 마음이 조급해져요. 지금까지 이 공부를 해왔던 사람들에 비해 나는 한참 부족한데,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맞나? 내가 잘하는 것들은 다른 곳에 있는데,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겠다는 선택이 맞는가? 이런 생각 때문에 혼란스러웠어요. 필요한 만큼의 성취를 이루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요.



새로운 전공을 선택한 데 후회는 없나요?

절대 후회하진 않아요. 인공지능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동안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봤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아쉬울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지금 이 공부밖에 없어요. 사실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었는데 저는 '잘 맞는 일', '잘하는 일'이 아닌 '안 하면 가장 아쉬웠을 일'을 선택한 셈이죠.


새로운 도전을 이겨내는 본인만의 비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실래요?

어떤 일을 하든 다 나만의 자산이 된다! 라는 생각이요.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경험이 모여서 저 자체를 차별화한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관심사가 많았거든요. 무용, 연극, 글, 기획, 법학과 인공지능 연구까지, 이렇게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저만의 경험을 쌓으면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제가 되잖아요.


이것저것 찔러보며 작은 성취를 얻었던 경험도 제게 중요했어요. 처음에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잘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기거든요. "방법을 찾다 보면 금방 잘할 수 있게 되겠지?"라는 믿음과 자신감은 무언가를 성취해본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binary classification


혹시 이건 뭔가요? BINARY 분류 모델?

비나리 분류 모델이요? 저희 고양이 두 마리 이름을 합치면 비나리예요. '비나'와 '나리'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딥러닝에는 'binary classification'이라는 분류 모델이 있어요. 구분하고자 하는 결괏값이 2가지인 경우를 말하는데요. 저는 이걸 비나와 나리를 구분하는 모델로 만들었어요. 사진 데이터도 워낙 많아서 그걸 분류하는 목적으로 만든 거예요.


신기한 경험이네요!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분류하는 데 딥러닝이라니, 재능 낭비라고 하나요?

아직 코딩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연습을 하려고 만든 거였어요. 보통 캐글이나 데이콘이라는 플랫폼에서 경연대회를 하고, 연습용으로 지난 경연대회도 볼 수 있고, 코드 공유도 받을 수 있어 공부하기 좋은데요. 막상 흥미로운 주제를 찾지 못하니 연습에 열의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마침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과학 공부를 하거나 학교에서 무언가 배워 오면 집에서 그걸 적용해 보잖아요? 이파리도 주워와 보고, 은박지에 털 뭉치를 갖다 대보고, 무언가 순전히 재미를 느끼면서 실험적인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배워도 흡수가 빠르고요. 지금은 시간에 쫓기고 있으니 머릿속에 정보를 집어넣기만 하고, 직접 실험하면서 체화할 기회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딴짓을 해야겠다!' 비나리와 binary가 동음이의어인 게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는 주제라 실험을 해봤어요.







이번엔 새로 산 물건으로 본인을 소개해주셨으면 해요. 어떤 물건이 있나요?

우선 청소기를 샀어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다 보면 털이 많이 빠지거든요. 아침마다 청소기를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예쁜 청소기를 찾았어요. 이제 일어나면 집을 한 바퀴 돌며 고양이 털을 청소하는 아침 루틴이 생겼어요.


핑크색 키보드는 글을 쓰려고 샀던 거예요. 저는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관심사가 다양한 게 좋은 거 같아요. 경험이 시각을 만들잖아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져본 경험이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새로 즐겨 듣는 노래가 있다면 소개해주실래요?

요즘 가장 즐겨 듣는 노래는 싱어게인에 출연했던 이무진의 <신호등>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요. 가사가 꼭 제 상황 같아서 좋았어요. 이제 목적지를 정했는데 갈 길이 멀고, 걷기도 힘든데 자꾸 재촉하고. 겉으로는 초보운전자를 그린 가사지만 대학원에 새로 들어와 고민하는 저에게 딱 맞는 가사기도 해요. 특히 '난 아직 초짜란 말이야'라는 가사가 참 마음에 들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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