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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졍씅 Feb 04. 2023

기록하는 사람

History of Diary

태어나서 그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뭐든 처음에만 좋았지 오랜 시간 아끼고 애정한 것이 딱히 없다. 그러나 유일한 한 가지, 도구는 바뀌었지만 일평생을 해온 것이 있다.

바로 일기 쓰기다.



일기는 대략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적기 시작했다. 보통 내 또래들이 그랬듯 학교 선생님께 일기를 검사 맡는 숙제가 있었다. 대략 그림일기 같은 거를 그려가면 선생님이 밑에다 한두 줄 코멘트를 달아주시곤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늘 있었던 일, 재밌거나 속상했던 일 등 단순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아마 내 인생 가장 처음 했던 기록이 아닐까.

일기를 하기 싫은 숙제로 여기던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일기 쓰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안나의 일기’를 보고 깊이 감명받아, 나도 일기장에 이름을 지어주고, 일기에게 대화하듯 썼다. 숙제용 일기와 개인 비밀 일기를 분리해 짝사랑하던 남자애 이야기도 적고, 어디 가서 말할 수 없는 친구의 비밀도 적었다. 하필 그 당시 유행했던 샤랄라 한 일기장엔 자물쇠를 걸어 놓을 수도 있어 비밀 일기장에 안성맞춤이었다.

동 시기에 또 다른 형태의 일기도 성행했는데 바로 ‘교환일기’였다. 같이 어울리던 8명의 친구들과 함께 작은 수첩에 교환일기를 적었다. 순번과 분량, 최대 작성 기간까지 정한 나름 체계적인 활동이었다. 일기 밑에 댓글 기능도 있어, 내 차례가 오면 여덟 명의 이야기와 그 이상의 댓글들을 볼 수 있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열두 살에 무려 세 개의 일기를 병행했다니 나도 나름 글쟁이였긴 한가보다.

고등학교 시절, 책은 공부라는 전투 속에서 쉼을 허락해 준 방공호였다. 진로에 관한 책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3년간 100권의 책을 읽고 썼다.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사서 좋아하는 문장이 나오면 적고, 느낀 점들을 기록했다.

스무 살 때부터 새로운 형식의 기록을 시작했다. 바로 스쿠버다이빙 ‘로그북’이다. 매 다이빙마다 다이빙 장소, 시간, 수온, 가시거리, 보고 느낀 점 등 거의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당시에는 너무 피곤하고 귀찮았는데, 돌이켜보니 이 기록이 아니었음 모든 다이빙이 비슷하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벌써 100편의 특별하고 평범한 로그북이 남아있다.

일기를 매일 못 적어도 여행지에서 일기는 하루에 한 편씩 적으려 노력했다. 여행에서 하루는 무척 피곤하지만, 단순히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먹은 내용일 뿐이더라도 적으려 노력했다. 일상과 다른 공간에서 맞닥뜨리는 경험과 감정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그 덕분에 나의 첫 책인 ‘21살 꽤 괜찮은 도망’이 탄생했다.

25살 현재, 3년간 운영 중인 블로그, 서평, 여행 일기 등 지금껏 해왔던 다양한 방식으로 중구난방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나의 일기 이야기를 적고 싶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흔하지 않고 어딘가 독특한 그런 물건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역시 안되나 보다. 그래도 일기는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매개이기에 모든 일기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 인생처럼 내 일기 역시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다양한 형태의 내 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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