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딸의 딸

by 별집

오랜만에 외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아기 얼마나 됐노? 딸인가 아들인가? 애 키우기 힘들제? 그래도 재밌지? 예뻐 죽겠제?"

아기 돌이 다 되어갈 때까지 성별도 모르고 계시다니. 무심했던 큰손녀를 자책했다.

"네 할머니 애기 좀 더 크면 놀러 갈게요"

"아이고 아를 데리고 어디를 오노. 됐다 말이라도 고맙제. 아도 있고 이제는 보기 힘들다 마음만 오가면 된다. 이제는 이렇게 마음만 전하자, 알겠제?"


'이제는 보기 힘들다'

는 할머니의 말이 가슴에 내리 꽂혔다.

아기 데리고 언제 한 번 올 거냐,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전국 방방곡곡 부지런히 여행 다니시던 할머니가 이제는 집과 동네를 벗어나지 않으신다. 아니, 못하신다. 걸걸하고 대장부감인 할머니셨는데, 지팡이를 짚고 거동이 불편해진 본인의 모습에 스스로 위축이 되셨다고, 엄마를 통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포기하신 것 같다. 저 멀리 사는 큰손녀와의 만남을. 이제는 마음만 오가면 충분하다는 그 말씀이, 너무 가슴 아팠다. 뭐 대단히 멀리 산다고. 안 되겠다, 당장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외할머니는 내게 조금은 어려운 분이셨다.

할머니들이 무조건 손주 편이라는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외할머니는 나보다는 우리 엄마의 편이셨다.

정확한 사례가 기억나진 않는데, 어릴 때 '할머니는 나보다 엄마가 더 중요하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나의 할머니' 이전에 '엄마의 엄마'라는 생각이 어떤 사례로 인해 각인되어 있었다.



화창한 가을의 어느 날, 엄마와 딸과 함께 한가로운 고속도로를 달렸다.

초밥이가 먹고, 응가하고, 휴게소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보니 도착시간인 자꾸 늦어져 오후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할머니를 가장 최근에 본 건 재작년 결혼식에서였다. 아직 식이 시작되기 전, 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사진 기사님 너머 저 뒤쪽 문을 통해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시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었다. 그 전의 만남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어서, 할머니가 이렇게 작고 구부러져 있는 줄 미처 몰랐었다. 등도 크고 기골이 장대하신 우리 할머니셨는데.


그날 이후 계속 할머니 뵈러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이 되어 가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할머니와의 이번 통화가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할머니는 집 앞 도로에 나와계셨다.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내게 걸어오고 계셨다. 마음은 이미 달려와 나를 안고 계셨을 텐데, 할머니의 다리는 야속하게도 제 나이에 맞는 연로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 달려가 할머니와 눈을 맞추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할머니는 뭐 우냐는 표정으로 말없이 등을 뚝뚝 두드려주셨다. 곧 아기를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낡고 오래된 흙집. 초밥이는 이런 시골집도 처음이고 이렇게 늙은 할머니도 처음이라 그런지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 증조할머니를 쳐다봤다 말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한동안 울며 경계했다. 그래도 차음 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토토로 인형을 꺼내주니 활짝 웃으며 언제 울었냐는 듯 꺄꺄 돌고래소리를 내며 놀기 시작했다. 인형을 숨기는 증조할머니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인형을 뺏고 할머니를 만지며 할머니가 좋아졌는지 까르르 웃으며 완벽 적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역시 엄마의 엄마셨다. 기어 다니는 초밥이를 위해 물티슈로 바닥을 닦고, 이불을 털고, 이유식을 먹이는 딸의 모습을 보며 '할머니 되는 것도 힘들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되니 힘들지?'는 들어봤어도, '할머니 되니 힘들지?'는 처음 들었다. 할머니의 시선 속에는 나도, 초밥이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본인의 딸이 있었다. 할머니가 되어 딸과 더불어 손녀까지 살뜰히 챙기는 본인의 딸을 안 쓰러이 여기는 눈빛이 여실 없이 느껴졌다. 나는 할머니의 그 시선이 좋다.


엄마는 오 남매 중 첫째다. 할머니 눈엔 초밥이를 대하는 나와 엄마의 행동이 참 유난스러웠을 거다. 그래도 요즘은 애기가 귀하니, 하며 말을 아끼셨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첫 손주인 나를 그렇게 예뻐하셨다는 말을 다섯 번은 하셨다. 할머니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신다. 애기 추울까 봐 아랫목 아궁이에 불을 피워두셨다는 말도 열 번은 하신 거 같다. 애기는 더워서 못 자니 괜찮다고, 뜨뜻한 아랫목에서는 할머니가 주무세요,라는 대답도 열 번은 한 것 같다. 나는 같은 어조로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었는데,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엄마 아까 그 얘기했잖아! 애기 덥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그래? 그랬나?" 엄마는 속상함을 이겨내지 못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딸이니까.


시골집에 잘 적응하고 증조할머니 앞에서도 깔깔대고 잘 웃으며 잘 먹고 잘 노는 초밥이가 너무 기특하고 예뻤다. 나는 여전히 시골을 어려워하는 못난 손녀인데, 초밥이가 내 부족함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새벽 다섯 시에 눈 뜬 초밥이는 놀고, 맘마 먹고, 산책도 하고, 소랑도 사진 찍고, 감나무 밑에서도 사진 찍으며 바쁜 아침을 보냈다. 고요한 시골 아침 풍경에 갑자기 들어선 유모차를 보고 갑자기 길 가던 차가 멈춰 섰다. 창문을 내리고 웬 어르신이 아기 춥다며 따뜻한 염려를 하신다.


집으로 출발하는 시간도 초밥이가 정했다. 칭얼거리는 아기는 카시트에 앉기 무섭게 잠들어버렸다. 아기 좀 더 크고 또 올게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길 막힌다며 얼른 가라고 등을 미셨다. 아기에게 예쁜 옷 사 입으라고 꼬깃한 오만 원권 두 장을, 내게도 맛있는 거 먹으라며 한 장을 넣어주신다. 오길 잘했다. 이렇게 오길 잘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간 그렇게 미뤄왔을까.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 보니까 눈물이 나? 그게 옛정이 있어서 그래."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릴 때 오갔던 정이, 할머니라는 관계 속에 녹아있는 정이, 터져 나왔나 보다. 우리 엄마가 초밥이를 너무나 예뻐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첫 손주인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겠지. 기억나진 않지만, 할머니에게 받았던 엄청난 사랑이 내 안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으리라. 내가 받았던 가족들의 수많은 사랑이 나를 가득가득 채웠을 테고 그 사랑으로 성장했을 거다.

엄마가 되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성장하는 아기를 보며 나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가 할머니가 된다면 그때는 또 할머니의 시선으로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지 않을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볕이 들면 초밥이가 아장아장 잘 걸어 다니겠지. 어쩌면 할머니의 하- 정도는 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쯤 다시, 할머니를 찾아뵈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