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확대되는 바람에 회사 소통 미팅은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한 여자 임원의 강의였다. 그녀는 50대 중반이고 키는 작지만 다부진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다. 남성 중심의 경쟁사회에서 임원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을 보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을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성과보고회에서 발표하는 모습은 여러 차례 보았지만 강의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의 주제는 자녀교육이었다. 어떤 주제로 강의를 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회사에서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한 주제라고 했다. 늘 슈트 차림의 절제된 모습만 보여주던 H 상무가 자신의 가정과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면모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순식간에 온라인 접속자 수는 수백 명을 훌쩍 넘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는 엄마 때문에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도 스스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면에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내복 차림으로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있는 사진이 나왔다. 아이의 머리에는 하얀 머리끈이 질끈 묶여 있고 그 머리끈에는 '필승'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아이는 '필승'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뭔가를 꺼내 놓고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는 듯하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S 대학교 정문 사진이었다. 정문 앞에서 한 남학생이 갈색 점퍼를 입고 손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H 상무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H 상무는 자녀교육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런 기회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차라리 그 부분에서 그녀는 가장 진솔해 보였다. 화면에는 엄지 척 이모티콘과 박수 이모티콘이 물결처럼 출렁대기 시작했다. 대화창에는 그녀가 부럽다는 멘트들이 올라왔고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강의를 끝냈다.
강의 초반까지만 해도 기대를 품고 있던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회사에서 인정받은 커리어우먼으로써 혹은 인생 선배로써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H 상무의 강의는 실망이었다. 수백 명의 동료들과 후배들이 접속해 있는 온라인 강의에서 자식 자랑이라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들이 명문대학교에 갔으니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닐까.
나에게도 가끔 강의할 일이 있다. 남들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떨리고 긴장되고 두렵다. 강의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소간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해를 넘어서 감동을 준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진솔한 태도를 모두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만약 감동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공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꽤 성공한 강의라고 생각한다. 공감을 얻어내는 것 역시 감동을 주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H 상무의 강의는 나에게 감동도 공감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의 반발심과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명문대학교에 합격했으니 자녀 교육을 성공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H 상무에게 오히려 나는 씁쓸한 실망감을 느꼈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교육 목표는 서열화가 아니라고. 교육의 목표는 높은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닌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경쟁사회에서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깊은 사고를 통해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H 상무가 차라리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이라든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본인의 경험담을 얘기했더라면 적어도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만은 중요한 가치로 지켜왔다든가 하는 솔직한 이야기가 있었다면 훨씬 더 깊숙이 와 닿았을 것이다.
H 상무의 강의는 울림을 주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경쟁 중심의 교육제도와 뿌리 깊이 내재화되어 있는 대학교 서열화에 대한 병폐를 생각해 보게 했다. 명문대학교의 합격이 인생 전체의 성공이 될 수 없듯이 대학교 입시 실패가 인생 전체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도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입시에 실패했다고 해서 삶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래서 꽃 같은 어린 학생들이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말이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와서 뒹굴어도 보고 부딪혀도 보고 그러다가 넘어져도 괜찮다고. 그것이 인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