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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May 25. 2021

요리똥손의 배추 술찜 도전기

  나는 요리 똥손이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요리실력이 퇴화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콩나물을 무쳤는데 이상하게 쓴맛이 나고 순대볶음을 만들면 텁텁하기만 하다. 최근에는 자존심을 버리고 MSG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맛에는 큰 변화가 없다.

 나도 내 요리가 맛이 없는데 아이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요리라고 하면 기대가 없는 표정으로 식탁에 앉는다

 

  우리 엄마는 요리의 달인이었다. 왕년에는 별명이 박장금이었다. 집에서 못 만드는 음식이 없었다. 탕수육도 웬만한 중국집보다 맛있게 만들고 잡채며 갈비찜이며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몇 가지 메뉴는 식당에서 바로 판매해도 되겠다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박장금씨의 큰 딸인 내가 요리에 소질이 없을 뿐 아니라 똥손이라니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아무래도 엄마의 요리 쪽 재능은 나에게 전혀 유전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나도 웬만큼 하는 요리가 있다. 일단 콩나물국은 수준급이다. 이것은 술 좋아하는 남편과 오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재능인데 황태 콩나물국, 맑은 콩나물국, 김치 콩나물국까지 콩나물국 쪽으로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김밥하고 배추전도 맛있게 만드는데 사실 김밥과 배추전은 누가 만들어도 일정 이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기는 다. 그러나 손님을 초대했을 때 김밥과 배추전만 내놓는 것은 뭔가 허전하다. 집에 온 손님 입장에서는 대접이 형편없다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나의 흑역사 중에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결혼하고 처음 집에 놀러 온 남편의 친구 맞이였다. 그 친구도 눈치가 지지리도 없는 것이 결혼하고 한 달도 안 된 신혼집에 자겠다고 갑자기 올라왔다. 지방에서 서울 볼일을 보러 왔는데 마땅히 잘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 난이도의 음식은 배춧국과 김치전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배추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앉은뱅이 테이블에 배춧국과 김치전, 김, 계란 프라이를 정성스럽게 차려서 손님을 대접했다. 지금 생각하면 밖에서 음식을 배달해 주는 것이 훨씬 센스 있는 선택이었을 텐데 그때는 나름 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이상한 오기 같은 것이 발동을 했다. 남편의 친구는 열심히 먹었다. 맛있다는 말은 따로 하지 않았지만 밥 한 그릇을 비워 내기는 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그 친구의 아내가 요리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까 민망했다. 친구의 아내는 집에서 해물찜 같은 걸 만든다고 했다. 해물찜이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요리라니.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너무 소박한 밥상을 차려냈던 것 같아서 그 날 일을 생각하면 혼자 민망해진다.



   하여간 나의 요리 실력은 일관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시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친정 엄마가 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그 날 누룽지 백숙 요리를 대접했다. 옻물을 넣고 닭을 삶아서 살만 따로 발라 내고 국물에 찹쌀을 넣고 누룽지가 되도록 오래 끓였다. 닭고기는 씹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흐물흐물 잘 삶아졌고 국물은 약이라고 해도 될 만큼 깊은 맛을 냈다. 엄마는 그 날 요리가 흡족했던 모양이었다. 시골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카톡을 한통 보내왔다.

" 김서방 백숙 맛있게 잘 먹었다고 전해줘.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

그렇다. 그 날 누룽지 백숙을 만들어 낸 요리사는 바로 남편이었다. 나는 그냥 남편의 시다바리였다. 남편이 그 날 요리를 전두 지휘했다. 내가 한 역할은 식탁을 닦고 반찬을 꺼내고 숟가락을 꺼내는 정도였다. 남편이 요리를 할 때 보면 저렇게 해서 뭐가 되나 싶을 정도로 질서와 체계가 없다. 레시피를 검색하지도 않고 싱크대 앞에 서서 요리를 시작한다. 가끔은 도마도 꺼내지 않고 손바닥 위에 양파를 올려놓고 대충 잘라서 냄비에 집어넣기도 하고 계량도 하지 않고 설탕이나 고춧가루를 팍팍 뿌린다.

  반면에 나는 음식을 만들 때 꼭 레시피를 참고한다. 나의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진지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레시피도 하나만 참고하는 것이 아니다. 황금 레시피나 백종원 레시피처럼 인기 있는 레시피를 찾아서 꼼꼼하게 읽어 본다. 그런데 내가 만든 요리는 뭔가 아쉬운 맛을 낸다. 사실 2프로 부족하면 다행일 텐데 10프로 정도 부족한 맛을 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요리는 맛있다.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눈이 번쩍 떠지는 맛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밥솥으로 가서 밥을 한 공기 더 퍼가지고 온다. 남편이 집에서 만드는 요리는 김치찜, 백숙, 수육 같은 요리들인데 대충 만드는 것 같은데 정말 맛있다. 그때마다 나는 결혼 잘했다는 생각을 내심 하게 된다. 남편이 기고만장할까 봐 남편 앞에서는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되뇌는 내면의 목소리다.


그런 내가 어제는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제목은 배추 술찜이었다. 카페를 검색하다 보니 작곡가인 정재형이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배추 술찜이라는 요리를 만들었다는 글이 있었다. 슬쩍 보니까 나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배추를 켜켜이 쌓고 그 위에 차돌박이를 올린 다음 화이트 와인을 자작하게 붓고 15분 정도 끓이면 되는 요리였다. 앞에서 누누이 얘기했지만 나는 배추를 워낙 좋아한다. 그리고 마침 냉장고에 얼마 전에 사놓은 차돌박이가 있었다. 베란다에는 화이트 와인도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요리를 시작했다. 이번 요리가 성공하면 손님 접대할 때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부푼 기대를 품었다. 얼마 전 동생들이 왔을 때 김밥과 배추전만 내놓아서 부끄러웠는데 배추 술찜을 내놓으면 반응이 폭발적일 것 같았다. 나는 레시피를 꼼꼼하게 정독하고 요리에 돌입했다. 배추를 깨끗이 씻어서 한 입 크기로 잘랐다. 전골냄비에 배추를 켜켜이 쌓고 후추를 살짝 뿌렸다. 그 위에 차돌박이를 올리고 다시  배추를 쌓은 다음 마지막으로 차돌박이를 올렸다. 화이트 와인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콸콸 부었다. 레시피에도 콸콸 부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제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15분 찌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유유히 방으로 들어가서 15분 동안 할 일을 하고 나왔다. 그 사이 냄비는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배추 술찜은 거의 완성된 모양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그 사이 만들어 놓은 간장 소소도 식탁에 올렸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나는 황급히 레시피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냄비 뚜껑을 열고 요리를 했어야 했나? 아니다. 나는 레시피대로 했다. 레시피와 다른 부분은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5분 정도 배추 술찜을 더 끓였다.


 그 사이 학원에 갔던 딸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배추 술찜을 접시에 담아서 딸아이에게 내밀었다.

" 엄마. 이거 뭐야?"

" 너 정재형이라고 피아니스트 알지?"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만들었던 메뉴야. 먹어봐."

딸은 천천히 고기와 배추를 집었다. 나는 간장을 황급히 내밀었다.

" 이거 간장 꼭 찍어 먹어야 돼. 듬뿍"

딸은 배추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나 싶더니 싱크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입 안에 든 음식을 뱉었다.

" 엄마, 이거 뭐야? 여기 소주 쏟았어?"

역시 딸은 절대 미각이다. 딸은 나보다는 아빠를 닮았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 엄마,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할게"

나는 소주가 아니라 화이트 와인을 넣었다고 순순히 고백했다. 딸은 도저히 못 먹을 맛이라고 했다.


잠시 후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에게는 약간의 기대를 가졌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위인이니까 의외로 배추 술찜이 입에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편에게는 냄비째 가져다주었다. 남편은 한 입 먹더니 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차돌박이만 계속 집어 먹는다. 의외로 입에 맞는 모양이었다.

" 여보, 입에 맞아?" 차마 맛있냐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으니까.

남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차돌박이가 아까워서 고기만 건져 먹는 거야"

그런 거였구나. 남편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앞으로 이런 거 만들지 마라. "


요리똥손의 시도는 실패했다. 인터넷에는 실패할 수 없는 요리라고 나와 있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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