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산공원을 거닐다
내게 도산공원은 은근한 추억이 서린 공간이다. 빠른 걸음으로 15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작고 아담한 공원이지만, 매일이 혼잡하고 정신없는 강남에서 유일하게 도산공원은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차분함이 탐났던 걸까. 사회 초년생 시절, 일이 버겁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도산공원에 들러 자그마한 숲의 기운에 용기를 얻었다. 가끔 회사 동료와 점심 먹는 일 조차 답답하게 느껴질 땐 도산공원 벤치에 앉아 홀로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다.
그랬던 도산공원을 오랜만에 산책하고 나서는 길.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과 당근케이크를 주문했다. 햇살이 스미는 따스한 창가에 앉아 이 근처를 자주 배회하던 20대 중반을 더듬어본다.
어렸고 무식했다. 하지만 그래서 힘든 줄 모르고 더 열심히 살아냈던 것 같다. 지금의 내겐 어리지 않은 나이와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감성, 더는 도망칠 수 없는 책임감과 현실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