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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잎 Aug 14. 2022

달리기와의 오랜 악연 1

- J에게 달리기는 시련의 상징 

2022. 08. 14. 


J와 달리기의 첫 악연은 시간을 한참 거슬러 1977년의 일이다. 

초등 2학년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운동회 날이었다.

이전에는 J도 다른 아이들처럼 틈만 나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였으리라. 

심지어 잘 달렸었나 보다. 릴레이 반 대표로 뽑혔을 정도니까. 


문제는 

당시 J는 릴레이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고 운동회라는 것에도 별다른 감흥이나 참여 의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시키는 대로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뛰라면 뛰었을 뿐이었다. 

릴레이 역시 샘이 나가라니까 나가서 차례를 기다리며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앞뒤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몸은 앞을 향하되 눈은 뒤를 보는 릴레이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J는 앞 아이, 아니 뒤 아이가 뛰어오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앞이 어디지? 눈 쪽인가, 다리 쪽인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디로 뛰어야 하지?


순식간에 바통은 손에 쥐어졌고, J는 심각한 오판을 한다. 눈 쪽이다! 뛰자!  


열심히 뛰는 J의 등짝을 누군가가 '짝'하고 때렸다. 담임선생님이었다.

샘의 거친 손길로 인해 억지로 돌려세워진 J의 눈에는,

저 멀리 앞질러가고 있는 상대 팀 아이들이 보였다. 

J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 길고 외로운 트랙을 혼자 뛰어야 했다. 그야말로 꼴찌로. 

 

처음인지는 모르나 평생 잊지 못할 처절함과 소외감이었던 것 같다. 

릴레이가 끝나고 학급에 돌아왔을 때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받았던 야유와 눈총도 뚜렷이 기억한다.  


이 악연은 이후 달리기 공포증과 혐오증을 초래했다. 

학창 시절 내내 달리기를 싫어했고 무서워했다. 체육 시간은 제일 싫은 시간이었다. 


중학교에서도 체육은 즐겁지 않았다. 

더운 여름 대낮, 운동장을 가로질러 왕복시키고 늦게 들어오는 아이들은 한 번 더 왕복시키는 달리기 수업. 

J는 늘 끝까지 왕복하는 아이였다. 어지럽고 목마르고 숨 차고.

죽기보다 싫은 운동장 왕복. 감옥에 갇힌 죄수가 벌을 받는 것 같은 느낌. 

이것이 달리기에 대한 J의 감정이었다. 


두 번째 악연은 고등학교 입시 체력장.

20전 만점을 받으려면 달리기, 던지기, 매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네 종목에서 꽤 고득점을 해야 했다. 

윗몸일으키기는 두어 달 전부터 매일 연습해서 만점, 매달리기도 최선을 다해 28초로 선방, 

던지기는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니까 패스. 


문제는 달리기. 

연습할 때도 스타트 선에만 서면 심장이 심하게 빨리 뛰면서 곧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늘 들었다. 

너무 싫지만 이 느낌을 견뎌야 하는 것과 중간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창피를 어찌할까 하는 두려움 등 만감이 교차했다. 

이 모든 괴로움을 견디며 달렸지만 기록은 19초. 


그리하여 체력장은 18점을 받았다. 

200점 만점 고교 연합고사 중 20점이 체력장이었다. 

J는 이미 2점이나 깎여버린 것이다. 

고작 2점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 J는 200점 만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제법 공부 잘하는 야심 찬 소녀였다. 


체력장은 8월인가였고 연합고사는 11월이었던 것 같다. 

시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만점이 물 건너 가버린 것이다. 


마치 '달리기를 못하는 너는 만점을 목표로 할 자격도 없어!'라고 낙인찍는 것 같았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가 만연하던 시절, 신체 능력 또한 실력이니 받아들여야 했지만, 

자존심 강한 10대 소녀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굴욕이자 절망이었다.  


게다가....

그때까지 J는 몰랐다. 달리기와의 더 큰 악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음에 올 진짜 큰 악연은 대학 입시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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