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보내는 밤. 우리의 밤을 밝혀주던 소소한 이야기들이 없어진 고요한 밤을 당신이 선물로 남긴 LP 소리가 대신한다. 적막함이 흐르는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운 생각들로 머릿속을 울린다. 당신이 떠난 나의 공간은 공백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있었던 방으로 돌아왔다. 나의 작은 방에는 차가운 고요만이 가득하다. 저녁을 차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환기를 시키며 소리를 만들었다. 내 분주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채우던 소리들은 내가 동작을 멈추는 순간 함께 사라져 버린다. 마치 당신이 떠나간 자리처럼, 소리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당신은 나의 삶에 이미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신이 없는 날들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당신이 없는 나의 하루는, 당신이 차지하고 있던 조각들을 도려낸 것처럼 공백이 생길 것이다. 그 공백으로 공허가 밀려들어온다. 바다가 차오르는 것처럼, 달이 높게 차오를수록 당신이 있던 자리로 차가움이 밀려온다.
그 바닷속에서 조류에 휩쓸려오는 당신의 흔적들을 마주한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마시던 아페롤, 자그마한 부스에서 처음으로 함께 찍었던 사진, 매주 함께 보던 영화들, 비 오는 날의 박물관, 함께 맞던 크리스마스들, 윤슬과 함께 반짝이는 눈으로 웃으며 내 사진을 찍어주던 당신. 당신이 남기고 간 수많은 사진과 물건으로 이루어진 조류에 나는 이리저리 떠내려간다.
나는 바다 같은 당신을 항상 좋아했다. 겉은 고요해 보일지언정 내면은 폭풍과도 같았던 당신.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당신과 망망대해를 함께 헤엄치곤 했다. 어느 날은 당신과 행복이라는 무인도에 도착하고, 또 어느 날은 슬픔이라는 해일에 함께 허우적댔다. 당신은 종종 당신만의 슬픔이라는 깊은 바다에 빠지곤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깊은 바다를 알아갈수록 당신은 스스로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참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 긴 시간을, 당신은 이리저리 휩쓸려가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었다.
남들에게는 조용해 보이는 당신이 조잘조잘 내 앞에서 떠들어댈 때면, 항상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나는 조용히 웃으며 당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물속에서 프리다이빙을 할 때처럼, 나는 그저 당신이라는 바다에게 집중할 뿐이었다. 성격이 정반대인 나를 배려해 주고, 편하게 생각해 주고, 또 누구보다 소중하게 대해주어 참 감사했다.
당신은 내게 여름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의 여름은 어떠했을까. 나는 당신에게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없던 당신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내가 없을 당신의 계절들은 어떠할까.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튼다. 당신이 남기고 간 책을 꺼내든다. 당신이 가방에 고이 달아준 인형을 바라본다. 당신의 사진을 바라본다. 슬픔의 바닷물에 당신의 공백이 잠기지 않도록, 당신의 흔적들을 막는다. 나는 아직, 당신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에는 막아야 할 당신의 공백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당신을 참 사랑했나 보다. 사랑하나 보다.
앞으로도 당신은 어떤 파도와 조류가 올지언정 강하게 헤쳐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수없이 가라앉았다가 떠오른 당신이기에, 내가 없는 바다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잘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참 다양한 시간들을 함께 했는데도, 사진 속 당신은 참 환하게 웃고 있다. 앞으로도 당신에게 이러한 기쁜 순간들만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모니터 화면에 띄운다. 글의 내용을 고친다. 밝은 햇빛에 빛나는 윤슬같이 반짝이는 내용만 담고 싶은 글이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사용될 운명인 글이었나 보다. 당신이 나를 만날 때면 한두 개씩 사다 주던 스티커들을 바라본다. 당신과 함께하던 순간들의 웃음, 다툼, 슬픔, 미움, 분노 그리고 당신의 배려와 사랑을 떠올린다. 아마도 당신은 읽지 못할 망망대해 바다에, 작은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보낸다.